사순절 새벽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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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28~37
백종선 2026-03-11 추천 0 댓글 0 조회 34
[성경본문] 요한복음11:28-37 개역개정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요한복음 11 : 28 ~ 37

 

예수님이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베다니로 가셨다. 예수님이 가셨을 때 오라버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하시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말씀하시며 자신이 부활의 생명임을 밝히셨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를 만나신다. 예수님을 만난 마르다가 집으로 가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전하며 예수님이 너를 부르니 가보라 한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즉각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다. 32절에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며 오라버니가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다. 앞에서 마르다가 이와 같은 아쉬움을 표했는데 마리아 역시 동일하게 아쉬움을 표한다.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이를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신다.

여기서 예수님의 두 가지 감정을 보게 된다. ‘비통함슬픔이다.

 

비통함은 원어로 엠브리마오마이(ἐμβριμάομαι)이다. 격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격분하셨다. 예수님의 격분은 마르다와 유대 사람들을 향한 격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죄의 결과로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과 이로 인해 큰 슬픔을 겪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격분하셨다.

 

인간은 죽음 앞에 무기력하다. 막을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다. 죽음이 다가오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약한 인간의 한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안타까움으로 인해 애를 태우며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죽음은 잔인하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유대 사람들의 눈물을 보시며 비통해 하셨다. 격분하셨다. 이것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의해 빚어진 결과이기에 예수님은 거룩한 분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노로 끝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와 사망의 권세로 인해 무기력하게 죽는 것에 대하여 비통해하며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 능력은 예수를 믿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무기력하게 죽음 앞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비통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영생의 길을 전해야 한다. 누구든지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 영원히 산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셔서 영생을 주신 예수님을 증거하여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예수님이 느끼신 또 하나의 감정은 슬픔이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해 하셨을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이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보시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셨다. 36절을 보면 예수님이 눈물 흘리시는 것을 지켜본 유대인들이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한다.

사랑하면 공감한다. 사랑하는 자녀가 다치면 부모의 마음이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남의 일로 생각되지 않고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고, 사람하는 사람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 된다.

예수님은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를 사랑하셨기에 이들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눈물을 흘리신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와 마음을 함께 하신다. 4:15,16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하였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홀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을 겪거나, 큰 상처를 받아 마음이 무너질 때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이해하시고 우리의 감정을 헤아리신다.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뢰면 위로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우시고, 극복할 힘과 용기를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갈수록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진지하게 귀기울여 듣고,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차가운 반응을 느끼며 이야기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눈물은 마리아에게 큰 위로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를 위로하시고, 품어주시고, 이해하여 주신다.

 

더 나아가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마음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고, 품어주며, 서로를 세워주고 치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은 어떤까? 공감의 능력이 있는가?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이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공감의 사람이 되고, 진정한 위로자, 치유자가 되어 힘들게 눈물지으며 사는 사람들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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