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출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면서 교회의 역사는 시작된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확장되었다. 초대교회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고, 유무상통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된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 갔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이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 구제를 하는 과정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누락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신앙적인 갈등이 있었다. 히브리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또한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헬라파 신자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다. 주후 66년에 열성파 유대인들이 독립을 위해 로마에 반기를 들고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 수비대를 공격하고 점령에 성공하였으나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잔여세력은 맛세다 고지로 욺겨가 필사적인 저항을 하지만 3년이 지났을 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원 자살함으로 전쟁이 그친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계각지로 흩어져 방황하게 된다. 이로 인해 히브리파 신자들은 기독교와 유대교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만 했고, 이때부터 유대파 그리스도인과 헬라파 그리스도인의 구별은 없어지고 그리스도인으로 하나가 되었다.
예루살렘을 떠난 신자들은 로마제국의 전역에 흩어졌다. 이때부터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가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바울을 중심으로 세계선교가 진행된다. 기독교의 확장은 놀라울 정도였다. 소아시아 지역을 넘어 마게도냐를 거쳐 유럽으로 진출하여 로마의 심장부로 들어간다. 로마에 어떤 과정을 통해 기독교가 전해졌는지를 모르지만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로마에 교회가 있었고, 로마 황제의 가족과 친척들 중에 신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큰 핍박을 받았다.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로마에도 자체 종교가 있었다. 하지만 로마는 정책적으로 피지배 민족들의 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었다. 동시에 황제 숭배를 요구했는데 이를 수용하지 않자 로마에 반역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핍박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군인 징집을 거부하였다. 예수님이 칼로 든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평화주의자의 길을 선택했다. 로마 군대는 ‘미트라’라고 불리는 우상을 수호신으로 섬기며 전쟁에 나갈 시에는 ‘미트라’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박해가 무서워서 황제를 숭배하고 미트라 제사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소수의 철저한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불사하고 징집과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불순분자들로 간주되어 핍박을 받게 되었는데 그 박해는 250년간 이어졌다. 로마의 황제들에 의해 가해진 박해는 매우 가혹했다. 네로, 도미티안, 트라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르스, 막시누스, 데시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렐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가해진 10대 박해가 대표적이다.
네로는 로마의 화재를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방화로 결론을 내리고 형벌을 내렸고, 도미티안은 기독교인들을 제국에 대항하는 범죄인으로 여겼다. 데시우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고문, 협박, 몰수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은 무참하게 죽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모든 기독교 회당을 파괴하고 모든 성경은 불태웠으며,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공직과 시민권을 박탈하고 신들의 희생 제물로 삼았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정절과 충성은 더욱 강해졌고, 순교의 열정은 순식간에 번졌다. 무자비한 박해에 대하여 교회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고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을 최상의 영광으로 알았고, 죽음 앞에서 초연했다. 고문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면서도 상대를 위해 기도했다. 박해가 지속되면서 교회는 자하의 묘지로 숨어들어갔다. 그곳이 카타콤이다. 카타콤은 지하의 묘지라는 뜻이다. 이들은 마음껏 예배하기 위해 지하무덤도 마다하지 않고 들어가 그곳에서 생활하며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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