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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6:1~13
백종선 2026-01-29 추천 0 댓글 0 조회 31
[성경본문] 욥기6:1-13 개역개정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욥기 6 : 1 ~ 13

 

욥기 6장은 친구 엘리바스의 첫 번째 변론(4~5)에 대한 욥의 첫 번째 답변이다.

1~3.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말한다. 나의 괴로움과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놓고 달아본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경솔하였다고 한다. ‘경솔하다는 말은 원어로 성급하다’, ‘거칠다는 뜻이다. 자신의 표현이 거칠고 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신이 겪은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 한다.

욥은 한 순간에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건강을 잃었다. 이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런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출생을 저주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사산아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말을 한 것을 두고 자신이 경솔했다고 한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으면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난 이상 행동을 하기 쉽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있거나..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응을 보일 때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헤아리지 못하고 겉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고 비난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 그가 보이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기에 앞서 그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보면 판단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4절에서는 자신의 고통이 왜 큰지를 이야기한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혀,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고 이로 인해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친다고 한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이 내리신 고통이며, 그 고통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라 독이 묻은 화살에 맞은 것 같이 치명적이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려움을 느끼셨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상에서도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고통을 호소하셨다.

아무리 온전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큰 고통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며, 그 두려움으로 인해 평소와는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5~7절에서 욥은 자신의 탄식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5절에서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한다. 소에게 여물 먹을 시간에 먹이를 주지 않으면 소리 내어 운다. 소가 배고파서 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처럼 욥이 고통으로 인해 탄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런 것이다.

 

6,7절에서는 싱거운 것을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한다 한다. 맛이 없는 음식을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맛없는 음식은 있어도 먹지 않는다. 욥 역시 재난으로 인해 식욕을 잃었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8~10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은 내가 간구하는 것을, 내가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여 나를 끊어버리신다 할지라도 내가 위로를 받고, 기뻐할 것이라 한다. 그 이유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엘리바스는 욥이 이런 시련을 겪는 이유가 그만한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욥은 죽어도 위로를 받고 기뻐할 것이라 한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욥도 인간이다. 어려움이 지속되면 자신도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죄를 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욥은 빨리 죽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욥의 말에서 욥이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가 죄를 범하였기에 이런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고 말한 엘리바스의 말과 다르다.) 욥은 지금 자신의 결백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욥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욥이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한다. 욥의 이러한 점을 배워야 한다.

 

죄악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고,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쁨으로 삼는가? 죄악의 낙인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인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인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기쁨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죄를 행하는 기쁨보다 의를 행하는 기쁨이 훨씬 크다. 죄의 낙은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의를 행하는 기쁨은 시간이 지나도 그 기쁨이 소멸되지 않고, 갈수록 마음이 좋아진다. 그래서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계속해서 의를 행하며 선을 행하게 된다. 이를 기억하고 죄의 낙을 즐기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의를 행하는 기쁨을 경험하여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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