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5:2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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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신명기 5 : 21
10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다.
‘탐심’은 다른 계명과 달리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서 은밀하게 품는 탐심이 죄의 뿌리가 된다.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다.
사람들은 탐욕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욕심이 없는 것이 비정상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지만 이 욕심을 제어해야 한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죄를 낳는다. 마15:19절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라고 말씀한다. 죄악된 행동들이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려 준다. 탐심은 악한 생각을 품게 하고, 죄를 범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다.
탐욕으로 인해 범죄한 대표적인 예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다. 아합왕은 자신의 궁궐 앞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냈다.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거나 다른 좋은 포도원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나봇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라며 거절했다. 이때 그의 아내 이세벨은 아합을 부추겨 계략을 꾸민다. 거짓 증인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고발하게 하고 이로 인해 나봇은 돌에 맞아 죽는다. 이 악행을 보신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 아합에게 심판을 경고한다. 아합의 왕가가 멸망할 것이며, 이세벨의 시체를 개들이 먹을 것이라 하였다. 엘리야의 경고대로 아합은 전쟁터에서 죽고 그의 아들들도 뒤이어 죽임을 당한다. 이세벨 역시 개들에게 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의 탐욕이 어떤 죄를 불러오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탐욕이 죄를 불러온 예는 많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였을 때 아간이 탐욕을 부려 노획물을 몰래 훔쳤다가 큰 불행을 가져왔다. 이어진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후 아간의 범죄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가룟 유다’ 역시, 돈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였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 외의 여인을 탐하면 안 된다. 다윗이 범죄한 과정을 보면 궁중을 거닐다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다윗이 밧세바를 탐한 것을 보면 밧세바가 아주 매력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절세미인이라도 남의 아내는 탐내면 안 된다. 그러나 다윗은 이를 절제하지 못하고 탐심에 이끌리어 밧세바를 범하게 된다. 다윗의 범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안 이후에는 우리야를 불러 아내와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하자 결국 우리야를 격전지로 보내어 적의 손에 죽게 만들었다. 다윗의 탐욕은 밧세바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야를 속이고 죽였다. 이 모든 죄악의 시작은 우리아의 아내를 탐하였던 다윗의 탐욕이었다.
본문 하반절에서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였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한다. 이웃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것과 이웃의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이웃의 것을 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죄의 유혹에 빠진다. 돈을 버는 것이 쉽지 않다.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수고해야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돈을 모으는 것이다. 일해서 돈을 벌면 대부분이 생활비로 나가고,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살면 현재의 빠듯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하는 게 힘들고,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딴 생각을 품기 쉽다.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품는 순간 탐욕이 생긴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을 생각한다. 여기서 범죄의 유혹을 받게 된다. 손대지 말아야 할 돈에 손을 대거나, 어리숙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사기를 치거나, 마약, 밀수와 같은 불법 거래에 손을 대기도 한다.
바울은 딤6: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하였다.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죄의 유혹에 넘어가 악을 행하게 되고, 결국 자멸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탐욕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삶에 불만을 품기보다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빌4:11,12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였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이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자족하는 사람은 탐심을 품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밥 세 끼 먹고, 일하고, 잠자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지들을 만나 교제하고 대부분 이 틀에서 생활한다. 돈이 많다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을 보면 결말이 불행하다. 분에 넘는 돈을 가지면 이것이 재앙이 된다. 돈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다.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딤전6:7,8절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고 하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갈5:14,15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하였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들의 소유를 탐내기보다 그들의 행복과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탐심을 품으면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관계가 깨어지지만,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들과 함께함이 기쁨이며 행복이 된다.
탐심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탐심을 경계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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