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8-11 개역개정
-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요한계시록 2 : 8 ~ 11
본문은 두 번째 ‘서머나 교회’에 보낸 서신이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는데 이때 가장 많이 정착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서머나다. 로마제국이 지배 국가에게 황제 숭배를 요구했는데 유대인은 예외였다.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로마가 유대인에게 호감이 있어 이런 혜택을 준 게 아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유대인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고 이를 허용했을 뿐이고 유대인에 대한 감정을 좋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이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타겟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여 기독교인들에게 화살을 향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하며, 유대인들의 비방도 안다고 하신다.
서머나는 무역 항구 도시다. 그래서 서머나 사람들은 대부분 장사를 하였다. 장사하려면 지역 상인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 이들은 일 년에 수차례 정기적으로 황제숭배의식에 참여하여야 하고 로마 황제를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쳐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 의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장사할 수 없어 경제적 궁핍과 생계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기독교인을 비방하고 힘들게 만든 유대인들을 가리켜 자칭 유대인이라 하지만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고 사탄의 회당이라 한다.
이들의 실상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에게 한 행동을 보면 잘 드러난다. 폴리갑의 순교 사화를 읽어보면 유대인들은 폴리갑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황제와 로마의 종교를 기만한다고 하며 고발하였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폴리갑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사탄의 회당이라 불러 마땅하다.
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님은 핍박 중에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며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이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되고,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다.” 한다.
이 말씀을 받는 서머나 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서머나 교인들이 듣고 싶은 소식은 무엇일까? “이제 곧 핍박이 끝나고 새날이 오게 된다”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기대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다. 장차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될 것이며, 십 일 동안(일정기간) 환난을 받으리라고 한다. 이는 지금까지 받았던 핍박보다 더 강도가 높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성도들이 방에 가득 모여 같이 떡을 떼고, 찬양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며, 간증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전에 함께 했던 교우들이 많이 떠나가고 소수의 사람만 남았다. 어떤 사람은 순교 당하고, 어떤 사람은 유배지로 보내지고, 어떤 사람은 투옥되었다. 일터를 찾지 못해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힘든 상태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들려온 음성은 앞으로도 몇 사람이 옥에 던져지고, 한 동안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다.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키고,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라 하신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가혹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요구하시는 것일까? 인류의 구원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와 미래 교회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고지를 빼앗기면 그 뒤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영적 전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러서면 안 된다.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한다.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의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 목숨을 위협한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류의 구원이 걸린 문제이다. 교회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이어서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신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시며 11절에서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신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에게 약속된 것이 있다. ‘생명의 면류관’이다. 면류관은 이기는 자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관이다. 고대 올림픽이 열릴 때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이긴 사람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환호를 받으며 면류관을 수여 받는다. 이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땀 흘리며 노력한 것이 결실을 거두는 감격스런 순간이다.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마지막에 영광스런 관을 받게 된다. 그 관은 ‘생명의 면류관’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다. 약1:12절에서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궁핍하고, 비방을 받는 모습이 불쌍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들이 가장 영광스런 자들이다. 가장 복 있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생명의 관’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고, 환난을 겪고, 비방을 받는다 하더라도 둘째 사망에 이르지 않고 ‘생명의 관’을 쓰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영광을 누린다면 이전에 당한 일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인생은 처음보다 마지막에 좋아야 한다. 마지막이 좋으면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생과 시련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생각되지만 마지막이 나쁘면 지나간 과거가 다 후회로 남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이다.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어떤 상황이라도 죽기까지 충성하여 마지막 승리자의 모습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길 바란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