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50 : 1 ~ 11
제목 / 야훼의 종의 길을 따르라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이 품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과, 여호와가 바벨론의 신보다 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할 때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이제는 멀리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와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게 되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짓밟히고 훼파되면서 여호와가 바벨론의 신보다 약하기 때문에 패한 것이 아닌가? 라는 회의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기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이혼증서를 준 적이 있느냐? 채주에게 너희를 판 적이 있느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이혼증서를 써 준적도, 채주에게 너희를 판적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질문형식을 빌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포로 된 백성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냐?” 는 의문에 대하여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너희가 포로가 된 것은 내가 너희를 버려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죄악과 배역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로가 된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주고 계십니다. 포로가 된 것이 하나님이 버려서가 아니라 너희의 죄악과 배역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너희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죄악을 일삼고 배역의 길을 갈 때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을 예고하며 경고하였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용서받고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 버린 것입니다.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 너희를 구속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너희를 건질 능력이 없어 너희를 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바다를 마르게 할 수도 있고, 강물을 사막이 되게 할 수 있고, 하늘을 덮어 흑암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자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포로 백성들이 품었던 두 번째 고민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보다 약하여 패한 것이 아니냐? 는 의문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남습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포로가 된 것이 아니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4절 이하에 나옵니다.
4~9절은 이사야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의 노래’ 입니다.
야훼의 길을 따르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며 포로 백성들에게 ‘종의 길을 따르라’ 고 대답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종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4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여기서 종은 1인칭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종에게 두 가지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학자들의 혀를 주어 곤고한 자에게 말로서 도와줄 수 있게 하신 것’ 이고, 또 하나는 ‘깨닫는 귀를 주시어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신 것’입니다.
‘학자들’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림무딤’ 인데 ‘제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8:16절에서는 ‘제자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는 그냥 배우기만 하는 제자가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제자라는 뜻입니다.
이 본문에서 보여주는 종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로 도움의 주는 모습입니다.
유다의 포로백성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가 야훼의 종이 보여준 모습대로 포로생활 중에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은 것입니다. 회당을 세우고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정리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힘을 쏟았습니다. 회당마다 랍비들을 세워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유다가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과 제자는 주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또한 그 배운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며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나는 목회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구역장도 아니므로 가르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가르치는 일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손주들의 신앙은 누가 세워줘야 합니까? 교회학교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만나 예배드리는 것으로 다 되지 않습니다. 신앙교육은 교회보다는 가정이 더 중요합니다. 신앙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나 이웃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권면하기 위해서는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르치면 오히려 안 가르친 것만 못합니다. 가르치려면 먼저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아침마다 깨우치신다’ 고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는 말입니다.
누가 배울 수 있습니까? 배우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배우려는 의욕이 있는 사람은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쓸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야훼의 종이 보여준 본을 따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아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서지도 아니하며”
야훼의 종은 귀를 열어 듣고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철저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앙인의 참된 모습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간혹 인터넷을 통해 탁구레슨동영상을 봅니다. 동영상 중에 정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드라이브의 정석’ 이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드라이브를 잘 하는 사람의 드라이브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석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도 말씀의 정석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이 말씀과 일치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예수님처럼 되지 않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부정적일 때가 많습니다. 이를 방치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말씀의 성육화가 되도록 예수님을 본으로 삼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척 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랑하는 척, 선한 척, 바른 척 하는 것.. 이건 위선입니다. ~척 하면서 자신이 마치 온전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마음과 생각, 나의 말과 행동이 바로 바이블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모습이 말씀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듬고 성장하는 일에 힘쓸 수 있기 바랍니다.
6절입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수난 받는 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얼굴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자신이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지만 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당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만약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어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삶을 사는데 누군가 수치와 모욕을 준다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야훼의 종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셔서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얼굴을 붉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눈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만약 수치와 모욕을 당할 만한 일을 하여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면 그건 자업자득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었다고 얼굴을 붉히면 오히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더 드러낼 뿐입니다. 이때는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자성해야 합니다.
내가 수치와 모욕을 당할 일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나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 말을 한다면... 태연하게 넘기십시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헤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야훼의 종이 갖고 있는 확신이 있습니다.
나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CCTV나 블랙박스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전에는 교통사고가 나면 분명한 증거가 부족하다보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함부로 큰소리치지 못합니다. 정황이 그대로 다 영상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CCTV나 블랙박스보다 더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마음 졸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의로운 자를 공격하고 대적하면 이 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4~9절에서 ‘야웨의 종’ 의 모습을 보여주고 난 이후에 말씀을 듣는 유다 백성들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10절에서 야훼의 종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며, 11절에서는 횃불을 피워놓고 야훼의 종을 모욕하는 자들의 편에 서면 자기가 피워 놓은 횃불로 걸어가게 될 것이며, 고통이 있는 곳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하나입니다. 비록 그들이 이전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고 포로생활이라고 하는 암흑과도 같은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우리도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이 난무합니다. 진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서로 속고 속이며 점점 더 깊이 죄악의 소굴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죄인을 만들기도 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을 희생물로 삼기도 합니다.
이런 흑암과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훼의 종이 보여준 모습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내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희망이며, 구원의 길임을 믿고 야웨의 종이 걸어간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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