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48 : 1 ~ 22
제목 / 구원의 여정
오늘 본문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악한 유다 백성들의 실상을 지적하시고 이러한 유다를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유다 민족이 어떤 민족인지를 언급합니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이스라엘이라고 이름 불리는 민족이고, 유다의 혈통에서 나온 민족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잠시 말씀을 드리고 다시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던 유대민족이 언제부터 이스라엘이라고 불려 졌습니까?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부러진 이후에 싸운 사람이 야곱에게 너는 이제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 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원래 뜻은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 라는 말과 ‘엘’ 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이스라’ 는 ‘주도하다, 다투어 이기다, 다스리다’ 는 뜻을 가지고 있고 ‘엘’ 은 ‘신’을 호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와 ‘엘’을 합치면 “하나님이 주도하다. 하나님이 이기다. 하나님이 다스리다”는 뜻입니다.
BDB 히브리사전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고 하였을까요?
원래 해석과 반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환도뼈를 쳐서 야곱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적 의미의 해석이 맞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뜻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이전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전까지 누구와 싸우던 늘 이겨왔습니다. 지고는 못 견디는 인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다리를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축복권도 형 에서로부터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그가 원하는 라헬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나올 때는 많은 양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한 대가로 얼룩무늬 양을 자신의 몫으로 한다고 약속을 한 이후에 양이 교배를 할 때 얼룩진 무늬를 보도록 하여 얼국 무늬 양을 많이 잉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착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씨름을 하고 난 이후에도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하며 붙잡고 늘어집니다.
그러자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네가 야곱이란 이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려고만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런 삶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주도하고, 이기면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도하며 하나님이 너를 이끄는 삶을 살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와 유다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이스라엘’ 이란 이름을 갖고 있고, 유다의 혈통에서 나온 선택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과 공의’가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고, 유다의 혈통을 가지고 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언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과 공의는 실천하지 않습니다. 선민이라는 의식과 종교적 형식은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그들이 완고한 백성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목이 쇠 근육’이라는 뜻인데 ‘목이 꼿꼿한 교만한 백성’ 이라는 말입니다.
“네 이마는 놋이라” 는 말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알지 못하는 철면피’ 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완고하고 교만하고 철면피인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면 이것을 ‘내 신’(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이를 행하였고, 그들이 새기고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없도록 미리 예전에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의 행위를 말하여 그들이 듣고 알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완악하고 교만하고 수치를 모르는 이런 모습은 단지 유다 백성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야곱과 같이 항상 내가 우선입니다. 내가 이겨야 하고, 내가 차지해야 하고, 내가 드러나야 합니다. 나에게 공이 돌아오지 않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일단 평가절하(平價切下)부터 하고 봅니다. 잘된 일은 내 탓이고, 잘못된 일은 네 탓입니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고, 남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자질이 부족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기가 우선입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내가 만든 우상에 대해서는 집착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까지도 자신들이 부어 만든 우상이 했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이런 완악하고 교만하고 수치를 모르는 패역한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우선이고, 자기만 드러나야 하고, 자기만 인정받아야 하고, 그래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똑같이 자신을 우선하는 사람들... 이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이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만 주는 없느니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 대하여 참고 인내하십니다. 이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이들을 새롭게 하실 일을 계획하십니다. 그 내용이 6절 이하에서 나옵니다.
6절 중반절에서 7절을 보십시오.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전까지 네가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은비(隱秘)한 일을 말씀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계획은 지금 창조(만든)된 것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구원의 계획은 몇 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나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은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불에서 원석을 녹입니다. 그래서 불순물을 다 걸러내고 순수한 은만을 뽑아내는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하나도 건질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 중에 은을 제련하는 용광로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한 방법이 고난의 풀무 불에서 연단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의 풀무 불에서 연단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을 깨우치시고, 이들이 뉘우치고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고난의 풀무 불의 연단 과정이 바벨론 포로 기간입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은 고난의 풀무불에서 그들을 새롭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고난의 풀무불에서 연단시키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불을 거치지 않으면 완악함과 교만함과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뻔뻔한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연단을 시킵니다.
연단을 받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감사함입니다. 완악하고 교만한 우리를 멸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회개입니다. 우리를 고난의 풀무 불로 지나가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키고자 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완악함과 교만함, 뻔뻔함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난의 풀무불에서 건져주십니다.
본문 14,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연단하신 후에 바벨론의 손에서 건져내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가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고레스’를 말합니다. 바벨론을 치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고레스 왕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일으켜 그가 바벨론을 쳐서 무너뜨리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건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생활이라는 고난의 풀부불에서 연단하여 ‘완악하고 교만하고 뻔뻔함을 걸러내고’ 난 이후에 ‘고레스’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건져냅니다.
고난의 풀무 불에서 연단하는 목적은 ‘새롭게 하는 것’ 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회개하고 마음이 새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건지십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끝이 있습니다. 회개하면 그 징계는 끝이 납니다. 고난의 풀무 불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재련의 과정이 끝난 금을 계속해서 풀부 불에 두지 않습니다. 정금으로 만들어 귀하게 사용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48장에서 핵심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여기서 ‘나’ 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와 그의 영, 성령을 보내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구원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이 오실 때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날 때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완전히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뉘우침은 일시적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온갖 죄를 지어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옵니다. 그 때부터 평화가 임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또 다시 죄악으로 빠져듭니다. 이것의 연속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갈 때 새로운 삶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을 때 바른 인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48장은 구원의 여정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48장에서 보여준 구원의 여정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완악함 – 하나님의 참으심 – 고난의 풀무불로 연단 – 고난의 풀무불에서 건져내심 –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게 하심.
이 모든 일을 누가 행하십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시키셔서 회개케 하시고,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어서 거듭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기 바랍니다.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의 백성이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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