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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6:1-22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79

성경 / 이사야 36 : 1 ~ 22

제목 / 오만한 자의 실체

 

오늘 본문의 배경이 1절에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취하니라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을 치리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장을 보면 히스기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18:3)

히스기야는 블레셋의 전 지역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군사적으로도 국방을 견고하게 했던 히스기야였지만 그에게도 중대한 위기가 닥쳤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유다의 중요한 도성과 요새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라기스와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주고 협상하여 일단 위기를 넘기는 듯 하였으나 산헤립은 또 다시 유다를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몰아붙였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기스는 유다의 중요한 마지막 요새이었는데 이를 점령하고는 랍사게(직위명)와 대군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3절에 나오는 것처럼 왕궁을 맡은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를 보내어 랍사게를 맞도록 합니다.

 

이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랍사게가 입을 엽니다.

4~10절이 랍사게의 말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랍사게가 앗수르 왕(산헤립)의 말을 히스기야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네가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네가 싸울 능력은 있느냐? 네가 무엇으로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 며 히스기야를 얕잡아보고 조롱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6절입니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네가 애굽을 믿고 그러느냐?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 애굽을 의지하면 도리어 그들의 손에 찔리게 될 것이다. 애굽 왕 바로는 지금까지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해왔다. 그러니 애굽 왕을 의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는 말입니다.

 

7절입니다.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여 나를 반역하였느냐? 그 신은 히스기야가 다른 산당과 제단을 제하여 버리고 예루살렘 제단 앞에서는 예배하라고 하던 그 신이 아니냐고 합니다. 이 말을 한 의도는 히스기야의 말대로 너희가 산당과 제단을 버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드렸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제 고양이 앞에 쥐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았느냐?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해 내지 못하리라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너희에게 말 2천 필을 준다고 해도 그 말을 탈 수 있는 자도 없지 않느냐? 너희야 말로 우리 총독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 그러니 애굽으로부터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고 하는 전략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고 하셨다고 하며, 이 땅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거짓말합니다.

 

랍사게가 한 말을 들어보면 산헤립의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그의 눈엔 모든 것이 하찮게 보입니다. 자신들을 막을 수 있는 대적은 없다고 생각하며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유다를 능멸하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유다를 가지고 놉니다.

 

랍사게의 말을 듣던 유다의 왕궁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입을 열어 랍사게에게 한 가지 청을 합니다.

그 요청한 내용은 당신의 이 말은 아람어로 하고 유다 방언으로는 말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이 이 말을 들으면 크게 낙심하고 동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이 요청마저도 묵살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산헤립 왕이 나에게 이 말을 전달하라고 하신 것은 히스기야와 너희 몇 사람에게만 말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성 위에 있는 백성들에게도 말하라고 보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에 있는 사람들을 표현할 때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는 항복하지 않고 성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자신의 배설물을 먹을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욕적인 표현이지요.

 

13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칩니다.

너희는 히스기아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져 앗수의 왕에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고 해도 그 말을 듣지 말라. 지금까지 우리를 대항했던 열국의 신들도 그들을 건지지 못했다. 그러니 너희도 너희 신을 의지하지 말고 항복하라. 앗수르 왕이 너희에게 전하라고 한 말이 있다. 너희가 항복하고 나오면 이전처럼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와 자기의 우물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게 할 것이며, 만약 너희가 원한다면 너희가 원하는 곳에 가서 지금처럼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

히스기야가 보낸 왕궁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가 한 말을 전하였습니다.

 

랍사게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사탄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을 때 마귀가 예수님에게 가서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귀가 한 시험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시험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두 번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세 번째 시험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첫 번째 시험은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하도록 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도록 하라는 자기 자랑과 자기 명예를 위해 살라는 시험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자신에게 굴복하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부와 영광을 주겠다고 하며 불의한 세력 앞에 굴복하라는 시험입니다.

 

랍사게는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부와 권력과 자기 영광을 선택한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유혹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강하니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항복하면 내가 너희에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와 같은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어떤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 때 이런 유혹은 더욱 강하게 다가옵니다.

 

이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랍사게와 같은 인생이 될 수도 있고, 히스기야와 같이 선한 일을 하는 거룩한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하는 소리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 집니다. 마귀의 말이 분명 잘못된 것이고, 어긋난 것인 줄 알지만 마귀의 말을 들으면 부를 취할 수 있고, 내 이름도 낼 수 있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허망한 길입니다. 스스로 속는 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이런 것에 마음이 뺏겨 불의와 타협하고, 깨끗하지 못한 돈에 굴복하며 살면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욕심을 부리고 싸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모아 큰 집을 사면 만족할 것 같습니까?

노년에 큰 집에서 살아보십시오. 그 큰 집이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좋은 자가용, 호화 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찾아오는 사람 없이 빈 집을 지키며 살면 인생의 무상만 느낄 뿐입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좀 배가 고프게 산다 할지라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하면서 살면 자기 인생의 보람을 느낍니다. 선한 삶을 살면 주변에 선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겠습니까?

 

시편1:6절을 보면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26:7절을 보면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고 하였습니다.

잠언4:18을 보면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사는 자의 인생을 지키시며 평탄케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의인의 장막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의 후손은 강성하며 복이 임합니다.

 

큰 소리 쳤던 산헤립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한 대로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을까요?

다음 장 이사야 37장을 보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가 나옵니다. 그는 전쟁에 크게 패하고 겨우 자기 목숨을 부지하여 집에 돌아갔으나 그의 아들들의 손에 피살을 당하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 하나님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모르기 때문에 손에 뭔가 들고 있는 것이 있으면 큰 소리치고, 뭔가 권력을 쥐고 있으면 천하를 호령하려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나의 강함을 자랑하기보다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나의 강함을 자랑하면 꺾일 때가 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산헤립과 같이 내가 정복하고, 내가 올라서고, 나를 나타내려하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며,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고, 서로를 섬기며 의의 길로 걸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와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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