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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5:1~10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63

성경 / 이사야 35 : 1 ~ 10

제목 / 사막에 샘이 흐르게 하라

 

34,35장은 이사야 전체에서 연결부의 역할을 합니다. 1~33장은 심판의 메시지가 주를 이룹니다. 40~66장은 구원의 메시지가 주를 이룹니다. 이 사이에 위치한 34,35장은 연결부의 역할을 하는데 이 중에 34장은 심판을 선언하는 이사야 전반부(1~33)의 맺음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35장은 구원을 노래하는 이사야 후반부(40~66)의 서막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심판의 메시지에 해당하는 34장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35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앞의 34장에서 이사야는 에돔(대적하는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였는데 오늘 본문 35장은 대조적으로 자기 백성에게 이루실 구원과 회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장차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어 대적의 손에서 구출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사야는 운문과 산문으로 되어 있는데 본문은 운문 형식입니다. 시의 형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보면 상징성이 많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한다.”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한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이런 표현들은 상징성을 띤 시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석하려면 시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시적 감각이 있으면 이사야가 전하고자 하는 그 느낌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은 생명이 살기 힘든 척박한 곳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광야나 사막에서 살아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절망감을 느낄 것입니다. 식물을 심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물을 구하기 힘듭니다. 짐승들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힘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 할 때 이렇게 어려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평안이 없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절망과 탄식, 슬픔과 두려움과 같은 느낌들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한다고 노래합니다.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노래할 수 있습니까?

그곳이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레바논과 갈멜과 사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금방 이미지가 떠오르는 곳입니다. 레바논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설악산과 같이 아름다운 산으로 최고의 목재로 알려진 백향목 숲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갈멜은 아름다운 포도원 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샤론은 사철 꽃이 만발하는 대평원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 레바논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고된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과 행복이 넘치는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또 다른 상징적 표현이 5절 이하에 다시 나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앞에서는 땅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했는데, 이번에는 사람과 땅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포로생활을 한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맹인처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처럼, 뛰지 못하는 불구자처럼, 말하지 못하는 농아가 되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보지 못합니다.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닐 수도 없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포로생활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속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고, 사슴처럼 마음껏 뛰어다니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며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해방과 날이 도래하여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는 광야에서 물이 솟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물이 솟는 원천이 되고, 승냥이가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역시 폐허와 황무지와 같았던 삶의 터전이 비옥한 곳이 될 것이라는 회복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시적 표현을 통하여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복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과 같은 절망적인 인생을 레바논과 갈멜과 사론과 같은 아름다운 삶으로 바꾸시고, 맹인, 귀머거리, 불구자, 농아와 같이 속박을 받으며 사는 자에게 자유롭게 보고, 듣고, 노래하고, 다닐 수 있도록 온전케 하시고, 황무지와 같은 삶의 터전을 비옥한 곳으로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여호와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정황은 어떠합니까?

메마른 광야와 사막과 같은 곳은 아닙니까?

탐욕에 눈이 멀면 이 세상은 사막과도 같은 곳이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잠실운동장의 2000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사막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사막으로 변해버리는 땅이 우리나라 면적의 6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진행된 사막화 면적은 약 52억 헥타르로 전 세계 육지 면적의 4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몽골과 같은 경우는 국토의 90%가 사막화 되어 가고 있으며, 중국은 전 국토의 27.3%가 사막화 됐고 매년 3천 제곱킬로미터씩 사막화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와 호주가 사막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올라온 자료를 인용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사막화의 원인으로는 삼림지역에서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벌목과, 농업 활동을 위한 임야의 잠식, 댐 건설등 여러 개발 행위로 인해 녹지대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숲이 사라지면 지표면의 반사열이 높아져 강수량이 줄어들고 결국 빠르게 사막화 된다고 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기보다 이윤을 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개발행위를 함으로 사막화가 진행된다는 말인데 결국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육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탐욕에 눈이 멀면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합니다. 서로를 도구로 생각하고 이용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이용의 가치가 있을 때만 필요하고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관계는 냉혹해지고 이 세상은 생존을 위해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삭막한 생존각축장이 됩니다.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 아닙니까? 이런 세상에서 살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이런 사막과도 같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절박한 상황 가운데 놓이니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욕망에 사로 잡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이 세상은 더욱 빠르게 사막과 같은 삭막한 곳이 되어버립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회적 환경도 각박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물론 살아감에 있어서 돈이 꼭 필요하지만 삭막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풀어야 할 더 시급한 과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무한경쟁...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이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이것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것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막과도 같은 세상을 비옥한 땅과 같은 세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한경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과 나눔입니다. 섬김과 희생입니다. 유익을 주는 삶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을 보십시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하나님이 회복하신 그 땅에는 대로가 있는데 그 길은 거룩한 길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 길을 지나가지 못하고 구속함을 입은 자들만이 그곳에 들어갑니다. 그 곳에는 우매한 자가 들어가지 못하고, 사자나 사나운 짐승이 없고, 오직 구속받은 자만 그리로 행하고, 속량 받은 자들이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사막과도 같은 척박한 이 세상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거룩함을 힘써야 합니다. 거룩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속량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며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던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막과도 같은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며, 그들이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두려워하는 자들, 겁내는 자들에게 찾아가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며, 구원의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연약한 자를 도태시킵니다. 겁내는 자를 심약한 자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구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의 보스턴에 한 소녀가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여 심한 정신병을 앓았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고 사납게 대들었습니다. 부모도 지쳐 아이를 포기한 채 방치했고, 의사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격리 수용하였습니다. 이 소녀에게 은퇴한 늙은 간호사가 찾아가 사랑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항하며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아니하고 6개월간 옆에서 함께 하며 소녀를 도와주며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소녀의 마음은 점차 열리기 시작하였고, 간호사를 통하여 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유명한 헬렌 켈러였고, 그녀를 섬긴 간호사가 설리번입니다. 헬렌켈러는 설리번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라는 이중 장애를 가진 자로서 첫 번째 학사를 받았고, 그 후로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활동했습니다.

 

땅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막이 됩니다. 사막이라도 비가 많이 내리면 숲이 될 수 있습니다. 사막과도 같은 이 세상이 옥토와 같은 곳이 되려면 무엇보다 사랑의 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아름다운 비옥한 땅이 되어 그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열정적인 사랑으로 삶의 터전을 아름답고 비옥한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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