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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4:1~17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30

성경 / 이사야 34 : 1 ~ 17

제목 / 심판의 경고

 

34,35장은 이사야 전체에서 연결부의 역할을 합니다. 1~33장은 심판의 메시지가 주를 이룹니다. 40~66장은 구원의 메시지가 주를 이룹니다. 이 사이에 위치한 34,35장은 연결부의 역할을 하는데 이 중에 34장은 심판을 선언하는 이사야 전반부(1~33)의 맺음말에 해당하고, 35장은 구원을 노래하는 이사야 후반부(40~66)의 서막에 해당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심판의 메시지에 해당하는 34장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열국을 향하여, 민족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아와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열국과 민족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는 이들에게 심판의 경고를 둘려줌으로 돌이킬 기회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국을 향하여 민족들을 향하여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열국과 민족들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주관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주관자가 되십니다. 그 누구도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모든 민족과 열방들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폭정을 휘두르는 왕이 아닙니다. 자기 권좌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억압과 학대를 일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사랑과 공의로 세상을 주관하시는 선한 왕이십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위로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주관자가 되려고 합니다. 힘으로 약한 자들을 정복하면 자기 마음대로 약자들 위에 군림하며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칼로 땅을 차지하고, 백성들 위에 올라서서 군림하며, 백성들을 이용하여 자기 욕망을 채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세력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관자가 되심을 알리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누구를 주관자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탐욕을 추구하며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세력들을 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을 주관자로 받아들이고 따르기보다 탐욕을 추구하는 세력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 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자기 욕망을 채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나라 검사를 일부에서는 떡검이라고 부릅니다. 검찰이 뇌물을 받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면서 검사의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지 않는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많은 검사들은 공정하게 자기 책임을 수행하고 있지만 일부 검사들이 기업과 권력과 손을 잡고 이들을 비호해주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습니다.

검사뿐만 아니라 경찰, 정치인,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의사, 회계사, 교사, 목회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정직하게 자기직무를 수행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편에 서든지 결국에는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주관자로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주관자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랑과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누릴 것이지만, 하나님이 아닌 자기 탐욕의 길을 선택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2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내리는지 말씀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3절 이하를 보면 심판의 참상을 여러 표현을 통해 묘사합니다.

3 그 살육 당한 자가 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살육 당한 자가 내던진 바 되며 저주스런 죽음을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례는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도 패배한 군사들의 죽은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정상적인 장례 의식을 따라 조상들의 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죽음은 가장 저주 받은 죽음입니다. 긍휼 없는 심판이 내려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장사되지 않고 버려진 시체들로 악취가 진동하고, 그 피가 산을 적셔 산사태가 나듯이 산들이 녹아내린다는 말입니다.

 

4절입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상징적인 묘사입니다. 하나님의 만상(, , 구름, )이 잎이 마름 같이 쇠잔하여 사라지고 하늘이 두루마리 같이 말립니다. 운명의 날이 온 것을 의미합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에돔은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을 대표하는 나라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적대 세력들이 하나님의 칼에 의해 진멸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칼을 드시고 멸하신다는 말입니다.

 

6절에 나오는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로 해발 1천 미터 이상 되는 고지대에 위치한 난공불락과 같은 요새입니다. 이곳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모습으로 나오는 데 이는 에돔이 희생 재물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임을 해학적인 표현을 사용해 말씀한 것입니다. 에돔 사람들은 보스라가 고지대에 위치한 난공불락과 같은 요새이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제사를 드리기에 딱 좋은 장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강력한 요새를 만들어 자신을 방어하고, 최현대식 무기를 장착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입김만 한 번 불어도 티끌과 같이 다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력으로 안위를 삼고, 자신의 재력으로 요새를 삼아 안전하게 거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늘 끝이라도 바다 깊은 곳이라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경찰과 검사들이 유병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검사들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1절에서 열국과 민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스바냐2:1~3절을 보면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을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의 날을 경고하며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고하지 않습니다.

 

죄의 길로 빠진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죄악된 행위가 마음에 걸려 돌아서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서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할까봐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느라 돌아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지은 죄가 아무리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 넉넉한 품으로 품어주십니다. 누구든지... 민족과 인종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품어주십니다.

 

자녀들을 키우다보면 자녀들이 삐쳐 아빠 싫어! 엄마 싫어! 하고 돌아설 때가 있습니다. 또는 자녀들이 실수로 집안에 귀한 물건을 깨뜨리거나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가 자녀를 몰아내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저지른 실수보다, 부모님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실수나 잘못은 부모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자녀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 때문에 부모님의 마음을 실망시켜드렸다고 부모님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실 것이라고 짐작하고 스스로 부모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멀리하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니 이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님의 마음보다 훨씬 넓고 크고 부드럽습니다. 이전에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를 품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 중에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이전에 지은 죄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그 죄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이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

 

심판의 날의 성격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고, 또 하나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날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거역하여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자는 진노가 임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영광의 날이 임합니다.

 

한 마을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마을 사람들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고 가는 깡패가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놓고 살 수 없습니다. 이 마을이 평화로운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이 깡패가 마음을 돌이켜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선량해 지는 것과 또 하나는 이 깡패를 마을에서 쫓아내어 마을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더 바람직합니까? 깡패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깡패가 돌이킬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면 이때에는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 깡패를 격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십니다.

먼저 돌아설 것을 진지하게 권면하고, 그렇게 누차 말해도 돌아서지 않으면 다른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심판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가지고 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또한 구원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가장 많이 오용되는 본문이 있습니다.

1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단들이 이 말씀을 인용하여 모든 말씀에는 짝이 있다고 하며 그 짝을 인위대로 연결시켜 해석합니다. 본문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령하신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는 율법과 시가서가 있었고 나머지 책은 없었습니다. 이단들이 이 말씀을 적용할 때는 역사서, 신약의 내용들도 다 연결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짝이라고 하며 연결시켜 놓고 함부로 말씀을 해석합니다.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질 것의 확실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전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고 그 후에 이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린 채 손 놓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짝을 이루듯이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시행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주관하려고 하는 세력들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사랑과 공의로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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