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33 : 1 ~ 24
제목 /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30,31장에서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애굽으로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애굽이 자랑하는 마병과 병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신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이 손을 펴면 유다뿐만 아니라 도우러온 애굽까지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내게로 돌아오면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32장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지를 말씀하였습니다.
1. 한 왕을 세워 공의와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들이 큰 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하고, 폭우가 때 피난처가 되고, 마른 땅을 적시는 시냇물과 같고,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큰 바위와 같다.
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들을 지혜롭게 한다.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고, 들어야 할 것을 듣는 귀를 갖게 한다. 말할 수 있는 입을 갖게 한다.
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리석은 자를 존귀한 자리에 앉히지 않고, 존귀한 자를 등용한다.
5. 하나님은 세우신 왕에게 영을 부어주신다. 그리하여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고, 화평하고, 평안과 안전이 찾아오고, 복이 임하게 할 것이다.
오늘 본문 33장으로 들어오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유다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앗수르를 무너뜨리시고, 유다 백성들에게 평안과 위로와 복을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7~9절을 보십시오.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도다”
“용사들이 부르짖고,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고,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앗수르가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유다 성읍에 침략을 감행하였는데 이 때 유다가 당한 일로 인하여 슬퍼하며 부르짖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하18:13~17절을 보면 앗수르왕 “산헤립”이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받고 평화조약을 하였으나 이것을 어기고 침략을 합니다. 이들의 침략으로 대로가 황폐해졌고, 행인들의 발걸음이 끊어지는 등 유다의 땅은 초토화되었습니다. 레바논은 백향목으로 유명한 곳인데 생산이 중단되고, 넓은 샤론의 평야는 사막 같이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바산과 갈멜은 목축하기에 좋은 초원이었지만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맞설 힘이 없어 당해야만 했던 유다의 용사들은 슬퍼하며 부르짖었고, 조약을 맺었던 사신들 역시 슬퍼하며 곡하였습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향하여 화를 선언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학대를 당하거나 속임을 당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학대하고 속였으니 이로 인하여 너희가 학대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며 화를 선언했습니다.
앗수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침략 행위는 피해를 입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한 보복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한 정당방위도 아닙니다. 이들의 침략행위는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행한 학대이며, 조약을 어기고 속인 비열한 짓입니다.
앗수르를 향하여 화를 선언한 이사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하나님께 은혜와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사야가 은혜와 구원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없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환난 때에 도움이 되시며, 구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기에 하나님께 은혜와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약자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고, 눈물지으며 참을 수밖에 없을 때 도움을 구하며 의지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판단하시며,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요란한 소리로 말미암아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이 흩어졌나이다 황충의 떼 같이 사람이 너희의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가 뛰어오름 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하나님이 일어나심으로 인해 민족들이 도망하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어섰다는 것은 심판의 칼날을 뽑아들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승패는 결정 났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누구도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하19:35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의 진영에서 18만 5천명을 쳐서 죽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죽은 군인들의 소유물을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를 황충의 떼와 메뚜기로 표현합니다. 황충과 메뚜기가 떼로 지나가면 곡물이나 식물이 삼키듯이 앗수르와 동조한 민족들이 이같이 진멸되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이사야는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존귀하셔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셔서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며,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고 찬양합니다.
이사야가 찬양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시는 분입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불의한 자들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도우시며 구원하십니다.
불의한 사람은 공의의 하나님을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으려하나 의를 바라는 사람은 공의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을 높입니다.
여러분은 공의의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공의의 하나님이 부담스럽고 멀리하고 싶은 분으로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공의의 하나님을 사모하며 늘 함께 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할 때 우리의 시대에 평안과 구원과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공의 없이는 진정한 평안도 없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충만할 때 이 세상은 평화를 누리고, 번영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네 보배이다.”고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 역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그를 축복하십니다. 본문15,16절을 보십시오.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절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합니다.
1)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 공의만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2) 정직히 말하는 자 –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3) 토색한 물건을 가증히 여기는 자 – 약자의 것을 착취한 물건을 멸시하고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4)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 누가 뇌물을 주면 손사래를 치며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5)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6) 눈을 감고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보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십니다.
2)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된다. - 삶의 터전이 안전합니다.
3)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복을 구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을 얻기 위해 재물을 쌓으려 합니다. 거짓과 불의를 행하고 뇌물을 받고, 토색하고, 악을 도모하면서까지 재물을 쌓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복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런 불의한 재물과 정당성이 없는 권력이 과연 복을 가져다줄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재물이 많고, 권력을 가진 자가 복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의한 재물과 불의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축복을 누리는 비결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정직을 행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참으로 복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불의한 재물, 불의한 권력으로 복을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를 행하고, 정직을 말하고,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높이시고, 안전하게 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 광활한 땅을 눈으 로 보겠고”
네 눈이 무엇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왕’과‘광활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볼 것이며, 그 왕이 통치하는 광활한 땅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물리치신 이후에 한 왕을 세워 광활한 땅을 통치하는 왕이 나타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한 모습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네 마음은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해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계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네가 강포한 백성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네 마음은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해 내리라”
앗수르가 침략하여 학대하고 핍박을 가하던 때의 두려운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한 동안 군대 꿈을 꿉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을 놓습니다. 이처럼 유다 백성들도 한 동안은 앗수르에게 짓눌렸던 때의 생각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계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뜯어내던 자들이 생각납니다.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경계를 서는 병력을 헤아리는 자들이 생각납니다.
이들이 어디 있느냐? 고 부정 의문문을 사용하여 질문한 것은 그들이 이제는 이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표현입니다.
이제는 자신들을 괴롭혔던 강포한 앗수르 군대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던 그들을 다시는 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백성들의 마음을 안심시켜주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예루살렘을 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고,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더 이상 공격을 당하거나 파괴되지 않고 영영히 견고히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
이사야는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소개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고, 율법을 세우신 이고, 우리의 왕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의 침공 속에서도 백성들에게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고,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우리의 왕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난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억압하는 자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죄악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란과 두려움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입으며 여호와로 인하여 복을 누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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