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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2:1-20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53

성경 / 이사야 32 : 1 ~ 20

제목 / 의로운 왕의 통치

 

30,31장에서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애굽으로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애굽이 자랑하는 마병과 병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신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이 손을 펴면 유다뿐만 아니라 도우러온 애굽까지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먹이를 놓치지 않는 사자와 같이, 새끼를 돌보는 새와 같이 너희를 지키며 보호하실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면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절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장차 한 왕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왕은 공의로 통치할 것이며, 그와 함께 하는 방백들은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왕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어떤 학자는 히스기야라고 하고, 어떤 학자는 요시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동일하게 말하는 것은 그 왕은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히스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히스기야나 요시아를 메시야의 모형으로 보는 데는 일치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그 왕은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십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통치가 무엇입니까?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공평한 통치입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통치가 실현된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평등한 사회입니다.

거짓이 없고, 착취가 없고, 억울함을 당하는 자가 없습니다.

수고한 대로 대가가 돌아옵니다. 권리가 보장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백성들의 의욕이 넘치고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불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하여 일해도 그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특정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를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백성들의 의욕은 꺾이고 불행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분인데 그 분의 친구가 네가 일하는 식당에 가서 팔아주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칩니다. 네가 와서 팔아주나 팔아주지 않으나 어차피 월급은 똑같이 받고, 네가 오면 내 일만 많아지니 차라리 오지 말고 다른 데로 가서 먹으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일한 대로 수고한 만큼 자신의 손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수고한 대로 이익이 돌아온다면 친구보고 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공정한 사회와 불공정한 사회를 비교한다면 어떤 사회가 빨리 발전하고 성장하겠습니까? 공정한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공정한 사회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는 의로운 왕이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공정한 세상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하나님이 세우신 그 왕은 백성들이 큰 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하고, 폭우가 내릴 때 가려주는 피난처와 같고, 마른 땅을 흘러가면서 땅을 적셔주는 시냇물과 같이, 햇빛이 내려쬐는 땅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큰 바위와 같이 백성들을 보호합니다.

 

통치자가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 국민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서를 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선서 속에 대통령의 임무가 들어 있습니다.

헌법 준수(질서유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과 권리 보호), 국가 보위(保衛-보호하고 방위함), 통일,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민족문화의 창달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활 보장이 주된 임무입니다.

 

그런데 나쁜 통치자들은 그 권리를 가지고 국민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하는 데 힘쓰기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력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군대와 언론, 사법부를 장악하여 자신들의 악행을 덮고 감추며, 더러운 탐욕을 채웁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왕이 백성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들이 지혜를 갖게 합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고, 들어야 할 것을 듣는 귀를 갖게 합니다.

조급한 자는 히브리어로 니므하림이라고 하는데 어리석다, 미련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급한 자는 사려가 깊지 못해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알지 못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자들이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말을 합니다.

 

나쁜 통치자들이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우맹(愚氓)정책입니다.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게 하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맹정책을 쓰는 국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3S정책입니다. Sports, Screen, Sex 에 관심을 쏟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포츠를 육성하고, 방송 영상 산업을 확대하고, 성시장을 개방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국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자신들의 목적을 이룹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어떻게 국가가 운영되고 경제가 흘러가는지 잘 모릅니다. 전문가들이 나와 좌담을 하는 내용을 들어도 이해를 못하고, 국가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떻게 되어 가는지 그 속을 모릅니다. 알아야 물은 것은 묻고, 따질 것은 따질 텐데 모르고 있으니 할 말도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지혜를 깨우쳐 보는 눈을 갖게 하고, 들을 귀가 열리게 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불의한 통치자는 사람을 등용할 때 사람의 능력이나 성실함, 정직함을 보지 않고, 자신에게 아첨하며 시키는 것을 수행하는 자를 씁니다. 여기에 등용된 사람들은 철학이 없고, 가치관이 없고, 바른 기준이 없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의로운 왕은 이런 어리석은 자를 존귀한 자리에 앉히지 않습니다. 우둔한 자를 등용하지 않습니다.

 

6,7절을 보면 의로운 왕이 왜 어리석은 자를 등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어리석은 자를 등용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奸邪 나쁜 뜻을 품고 이를 위해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를 행하며,

·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고,

·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없게 하며 - 약자의 것을 빼앗습니다.

· 그 그릇이 악하므로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고 가난한 자가 바른 말을 하여도 마찬가지로 멸합니다. - 약자를 짓밟고 비인간적으로 취급합니다.

 

의로운 왕은 이런 어리석은 자를 등용하지 아니하고 존귀한 자를 등용합니다. 그 이유를 8절에서 밝힙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자는 그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행동을 합니다.

· 불의한 자는 불의를 행하지만, 의로운 자는 의를 행합니다.

· 간사한 자는 간사한 일을 행하지만,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행합니다.

그 사람의 인품에서 그 사람의 행동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품을 갖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인품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인품을 가지고 있을 때, 의로운 왕이신 예수님의 손에 등용되어 존귀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인품을 가져 지혜롭고, 의롭고, 존귀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인물들로 쓰임 받기 바랍니다.

 

9~14절은 안일주의(安逸主義)를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9절을 보면 여인들에게 안일한 여인들아라고 부르는데 여인들이 안일주의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던 나에게만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회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적습니다. 이런 것보다는 자기 가족(남편, 자녀)에 관심이 많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자신과 한 다리 건너가면 관심이 멀어지고 상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안일주의가 지닌 위험성이 있습니다.

내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바깥일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합니다.

 

본문9,10절을 보면 여인들을 두고 염려 없는 딸들아”, “염려 없는 여자들아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군대의 공격으로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눈앞에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마음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게 될 터인데 포도 수확이 없고,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면 생활의 터전이었던 땅을 빼앗기게 되리라고 경고합니다. 안일하게 지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이 안일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안일주의는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 역시 안일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염려할 만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 넋 놓고 지내면 머지않아 당황하게 될 날이 옵니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기회는 아무나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대입의 기회, 취업의 기회, 사업의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나 그 기회를 차지하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입니다.

 

오늘을 편하게 지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어떤 일이든 갑작스럽게 준비할 수 없습니다. 작은 준비들이 쌓여야 큰 것으로 준비됩니다.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미래를 준비하여 당황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15절 이하를 보면 위에서부터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의로운 왕이 통치할 때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고, 화평하고, 평안과 안전이 찾아오고, 복이 임하는 역사가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영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가 세워졌을 때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으로 교회가 권능을 받아 예수님께서 맡기신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하려면 여러분과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거듭남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거룩한 성도로서 변화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과 이상을 꿈꾸며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우리가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사명을 완 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시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며 간구할 때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을 받아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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