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30 : 1 ~ 26
제목 / 위기를 극복하는 길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나 어떤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본문을 보면 위기를 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남 유다가 B.C.701년 앗수르에게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위기에 직면합니다. 이 때 남유다가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취한 방법은 애굽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4절에 나오는 것처럼 고관들이 사신으로 애굽의‘소안’과‘하네스’를 찾아갑니다. 6절을 보면 그들이 애굽으로 갈 때에 애굽의 호의를 얻기 위해 이들에게 줄 재물과 보물을 나귀와 낙타의 등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애굽으로 갈 때 일반 통상로가 아닌 험난한 길을 선택합니다. 일반 통상로는 해안길로 해서 나일 삼각주로 내려가는 길인데 이 길은 앗수르가 이미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 길로 가지 못하고 위험한 길,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뱀의 땅인‘네겝’을 지나 애굽으로 가는 위험한 길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준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얻은 성과가 무엇일까요?
6절 마지막을 보면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다”고 합니다.
7절을 보면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익한 민족에게 찾아갔으니 그들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간 것이 허사(虛事)라는 말입니다.
7절 하반절을 보면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다”고 했는데 ‘라합’은 여호수아에 나오는 기생 라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51:9, 시89:10, 욥26:12에 나오는 괴물로서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짓밟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괴물입니다. 라합과 같이 무능한 존재에 불과한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입니다.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유다가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위기에 봉착했을 때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간 것이 허사였고,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왜 애굽을 찾아간 것이 어리석은 일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위기가 왜 발생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위기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위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잠재적 요소들이 쌓이다가 어느 한 순간에 터집니다.
건물을 예로 들면,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실공사가 이루어졌거나, 건물을 관리하지 않아 건물의 기반이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무너집니다.
인생을 예로 들면, 인생의 위기 역시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전에 오랜 시간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방탕하며 살았던 과거가 있었기에 어느 순간 인생의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이고, 국가로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거나,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갈 때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인생이든지, 어떤 공동체이든지 바른 길에서 벗어나 이탈하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본문 9절 이하를 보면 유다가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그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9~11절입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그들은 패역(悖逆)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졌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패역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양심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이 바른말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이 거짓을 말하고, 바른 길을 버리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서 떠나시게 하라고 합니다.
유다는 그 동안 이런 죄악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다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유다의 죄를 터진 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담이 일직선으로 바로 서 있지 않고, 중간이 불룩 나오면 그 담은 위험합니다. 이렇게 배가 불룩 나오는 것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정도가 심해지면 어느 순간 위에서 누르는 힘을 지탱하지 못해 무너집니다. 유다의 상황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배가 불쑥 나온 담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를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바른 길로 돌아와야 합니다. 비록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 순간에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여 잘못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의 과오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벌려 위기를 모면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일시적인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바로 이와 같은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근본적인 문제와 잘못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이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하는 미봉책을 사용하였습니다.
반성할 줄 모르고, 돌이킬 줄 모르고,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얄팍한 수를 쓰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기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유다의 운명이 토기장이가 깨뜨린 그릇처럼 될 것이라고 합니다.
깨어진 항아리 그것도 잘게 파편처럼 부서진 항아리 조각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유다가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위기에서 벗어나 살 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말이나 빠른 짐승을 타고 도망친다고 하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렇게 도망쳐 보았자 남는 사람은 겨우 몇 사람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잠잠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따를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8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베푸실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재앙과 심판을 선언하시는 순간에도 돌아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복을 베푸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시온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며, 네가 부르짖을 때 은혜를 베푸시고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은 죄수들이 먹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처음부터 넉넉한 음식을 먹으며 풍요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너를 가르치고 인도할 스승(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고 가라 할 것이며”
너희가 좌우로 치우칠 때 스승이 네 뒤에서 바른 길을 가르쳐주시며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스승이 되어 바른 길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바른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을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물질적 축복을 약속합니다. 저주로 황폐해졌던 땅이 기름진 땅으로 변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적절하게 비를 주셔서 비옥해진 땅에 곡식이 풍성해지고, 광활한 푸른 목장에는 가축들이 풀을 배불리 뜯어먹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 날에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과 같을 것입니다. 이전보다 일곱 배나 더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아, 복된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계나 건물을 설계하는 일이나 그 설계도를 보고 기계를 제작하고, 건물을 건축하는 일이나 그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맡은 책임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구비되지 않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일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온전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재앙이냐? 축복이냐? 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른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죄 가운데 거하면 그 인생은 재앙이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우고자 노력하면 그 인생은 축복이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위기나 재앙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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