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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9:1~24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77

성경 / 이사야 29 : 1 ~ 24

제목 / 심판의 날과 회복의 날

 

본문은 유다에 임할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절을 보면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라며 아리엘을 부릅니다. 아리엘을 두 번 반복한 후에 다윗이 진 친 성읍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아리엘은 다윗이 세운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아이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아이엘을 괴롭게 하여 그들이 슬퍼하고 애곡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의 사면을 둘러싸고 진을 쳐서 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을 보면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치실 때 예루살렘 백성들은 장기간의 포위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질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B.C.701년에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포위 되어 장기간 극심한 고통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 상황을 배경으로 두고 한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듯 하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으나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종교적 형식이 있고, 계명을 가르치는 모습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공허한 제사와 교육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교육을 꿰뚫어보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진정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지, 우리가 가르치는 교육이 하나님의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만 모여 사람을 의식하며 드리는 형적인 예배인지, 우리의 교육이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이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이 없는 예배, 하나님이 없는 교육을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저들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입술의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입술로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해도 마음이 멀어져 있다면 입술의 말은 의미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진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진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형식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이 사라집니다.

이 지혜는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을 때 하나님에 대하여 우둔해 집니다. 무감각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예루살렘 백성들이 영적 소경이 되어 맹인과 같이 헤매고 비틀거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맹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앞을 보지 못하여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때로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웅덩이에 발을 헛디뎌 빠지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맹인과 같이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기 때문입니다.(10)

하나님이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의 눈을 덮으시고, 모든 계시를 봉한 책처럼 하여 백성들이 말씀을 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1,12)

 

정리하면, 예루살렘이 에워쌈을 당하여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져서 진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잃어버릴 때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패역함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비유를 통해 예루살렘 백성들의 패역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지음을 받는 토기가 토기장이를 진흙같이 여기고, 토기장이에게 나를 짓지 않았다 하며, 그가 총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토기가 토기장이를 진흙같이 여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지음 받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너는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총명이 없다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패역하면 이런 말을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 앞에서 큰소리치며 부모를 가르치려 듭니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스승이 이러니저러니 하며 말을 함부로 합니다. 부모에게 당신은 나의 부모가 아니라하며, 스승에게 당신은 총명이 없다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할 소리입니까? 제자가 스승에게 할 소리입니까?

패역한 자들의 모습이 바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패역을 행하였기에 예루살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 패역한 백성들에게 최후의 심판을 곧바로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17절을 보면 오래지 아니하여라는 말이 나오고, 18절을 보면 그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래지 아니하여 회복의 날이 오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의 날에 이루어질 일들을 전합니다.

17절을 보면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기름진 밭이 숲으로 될 것이라고 합니다.

레바논은 높은 지대에 위치한 산악지형입니다.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한다는 말은 거친 산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름진 밭이 숲으로 될 것이라는 것은 밭이 울창한 삼림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게 변해가는 예루살렘의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앞에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나타났던 모습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진심을 잃어버렸을 때 저들의 눈이 어두워져 맹인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18절에서는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듣고, 맹인의 눈이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져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가까워졌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이 귀에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고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깨달아지고 마음에 와 닿는다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 지루하고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체크해 보십시오.

바라기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기쁨을 풍성히 누리기 바랍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누구에게 기쁨이 더하고 누가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까?

겸손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인 하나님께서 강포한 자를 소멸하고, 오만한 자를 그치고, 기회를 엿보던 자를 끊었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면 강포한 자, 오만한 자들이 어떤 행동을 일삼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느니라

 

무죄한 사람에게 송사를 걸어 죄를 뒤집어씌우고, 이들의 횡포와 잘못을 이야기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잡아들이고, 헛된 일을 꾸미어 의인을 억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은 이런 강포와 횡포를 부리는 자를 심판하여 소멸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억눌렸던 겸손한 자와 가난한 자가 기쁨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죄악의 짙어질수록 힘을 가진 자들의 강포와 횡포가 심해집니다,

구원의 날이 동터올수록 겸손하고 가난한 자가 어깨를 펴고 자유와 기쁨을 누립니다.

 

이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며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날을 소망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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