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12 : 1 ~ 6
제목 / 구원의 노래
지난 시간 이사야 11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1절) 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싹은‘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그가 오시면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며, 평화로운 나라가 도래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하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지내는 것과 같이 해 됨이 없고, 상함이 없는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 때에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날이 오면’ 너희가 이렇게 노래하며 고백할 것이라고 하며 찬양의 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장의 구조를 보면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3절과 4~6절입니다. 각 단락의 시작을 보면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In that day you will say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그 날’ 은 구원의 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진노가 그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그 날을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이렇게 찬양할 것이라고 하며 찬양의 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압제를 받다가 해방이 되던 날 모든 백성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해방의 감격을 나누었습니다. 광복의 그 날을 아무런 감정 없이 맞이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던 순간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군대에 쫓기다가 하나님의 기적 같은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너고 뒤쫓던 애굽의 군대가 물에 수장되어 애굽의 손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사시대에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시스라가 병거를 몰고 군사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침입해 들어왔을 때 여사사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다볼 산으로 가서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을 때 드보라와 바락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보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은데 구원의 찬양을 부를 때마다 구원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은 구원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감격에 젖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이 무엇일까요? 아마 305장 찬송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구원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맺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는 찬양의 가사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십시다. 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1절을 보면 전과 이제를 비교합니다.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서 나를 안위하신다. 그래서 주께 감사한다고 찬양합니다. 전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을 길로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침략을 당하여 가족과 재산과 행복을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포로로 잡혀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서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진노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안위하여 주셨습니다.
“안위한다”는 말은 위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생을 하다가 어머님이 면회를 와서 아들을 품에 품어줄 때 울컥하고 올라오는 눈물과 함께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려 녹아내리는 그 느낌을 안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 혹독한 시련, 어디 가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독, 이렇게 심한 고생을 하다가 하나님의 안위를 받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과 감격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구원의 은혜를 받은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순간 지옥의 형벌을 선고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서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죄인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모진 고통 다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과 자유함, 구원의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런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절을 보면 진노에서 안위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니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야 말로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해 이와 같이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가 되시며,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두려움 없이 담대해지며, 나의 구원이시며 힘이 되신 하나님만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비유적으로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광야 사막이나 팔레스타인 지방은 물이 부족한 곳입니다. 우리는 물이 넉넉하기 때문에 물의 중요성을 잘 못 느끼지만 물이 귀한 지역에서 물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물이 있으면 살고, 물을 구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이들에게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있다는 것은 생존의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물을 넉넉하게 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많이 하는 선교방법이 수도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세우고 그 옆에 지하에서 물을 올릴 수 있는 펌프시설을 하여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데 이 시설 하나만 해 놓으면 사람들이 매일같이 모여들어 물을 길으며, 이 시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깁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이사야는 구원의 기쁨을 우물에서 물을 긷는 기쁨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진노에서 건져주시고, 죽음에서 살려주신 구원의 은혜야 말로 물을 구하지 못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물을 준 것 과 같은 기쁨, 아니 그 이상의 기쁨입니다.
요7:37,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면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목마른 분은 없습니까? 사랑에 목마르고, 영적으로 목마르고, 행복에 목마르고, 어떤 것이든 목마른 자가 해갈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수 있는 생수의 원천이십니다. 주님께로 나오면 생수의 강이 흘러 모든 갈함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암8:11절에서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목마른 자는 말씀의 샘을 파야 합니다. 그 말씀의 샘에서 생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갈함에서 벗어나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강이 배에서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통독을 위한 성서해설을 하지만 이것이 끝나면 묵상 훈련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말씀의 샘을 파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산에 가면 산삼이 있고, 약초가 있고, 맑은 개울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여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먹어야 그것이 내 몸에 약이 되고, 건강에 도움이 되듯이 말씀의 깊은 묵상을 통하여 깨닫고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할 때 그 말씀이 영의 양식이 되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 4~6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그 날’에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할 것이라” “아름다운 일을 온 땅에 알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은 알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국가나 교회나 지나온 역사를 남긴 것을 보면 안 좋은 것은 기록에 남기지 않고, 좋은 것은 기록에 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기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은 길이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날은 기쁨의 날이고 영광의 날이기에 이를 선포하고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난 후에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만 해도 피하고 숨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담대해져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소식이 너무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바치고, 복음 전파에 초점을 맞추고 나의 시간과 물질, 열정... 모든 것을 여기에 바칩니다. 복음 전파는 억지로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을 알고,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이 대열에 참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앞으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이 세상사는 동안 무엇 하였느냐? 고 물으실 때 대답할 말 준비하기 바랍니다.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돈 벌다가 끝난 인생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데 급급하다가 끝난 인생이 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끝난 인생이 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다 하나님 앞에 가면 내어놓을 것이 없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운 대답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복음의 사명 감당하다 왔습니다.” 바로 이 대답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살면서 대접받고 존경받는 것 큰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되십니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복음 전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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