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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1:1~16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303

성경 / 이사야 11 : 1 ~ 16

제목 / 공의와 평화의 나라

 

지난 시간 보았던 10장에서는 교만한 앗수르를 심판하시겠다는 선포에 이어 남은 자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면 이사야 선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서 그가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것이라는 놀라운 새 소식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하나님은 앞의 918~21에서 우거진 숲과 같은 이스라엘을 불사르고 그 땅에 남은 것이 거의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10:33~34절에서는레바논의 울창한 숲 같은 앗수르를 도끼로 다 찍어 황폐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황폐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희망의 싹이 다시 피어오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간혹 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넓은 임야를 태우고 검은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은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하다보니 자연 발생적으로 자주 화재가 발생합니다. 소방당국이 이를 빨리 발견하여 진화를 하면 괜찮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하여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면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름에 여행하면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화재가 난 지역의 나무들이 불에 타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재가 난 곳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그 땅에서 풀이 나고 나무의 움이 돋아 새롭게 숲이 형성됩니다.

 

불타고 황폐한 곳에서 새 싹이 나오듯이 황폐혜진 유다에 이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싹이 이새의 줄기에서 난다고 합니다. 이새는 다윗의 부친입니다. 이는 다윗의 왕조에서 희망의 싹이 돋아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다 왕조가 폐망한 상태에 놓여있을지라도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새로운 인물이 나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기를 원했을 때 하나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삼하7:16) 그 약속대로 유다가 비록 패망의 역사를 겪더라도 하나님은 이새의 줄기를 다시 일으켜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싹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일을 하실 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다윗의 후손에게 여호와의 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영은 어떤 영인가 하면... 지혜와 총명의 영이고, 모략과 재능의 영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입니다.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여호와 경외는 평화의 나라를 다스리려야 할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입니다.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루에도 수많은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고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 피해도 큽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빨리 빨리 내리려면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어떤 큰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힘과 뜻을 모아 동참하게 만드는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정치력을 발휘할 때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지, 어떻게 백성들을 설득시켜야 할지... 모략과 재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중심이 있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른 통치를 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런 통치력은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그 통치자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새로운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통치하실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부모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가고, 보살펴 드리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예배하는 것이 즐겁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기쁘고, 기도하는 시간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이런 사람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는 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바른 관계를 형성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통치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부와 권력이 있다고 그들을 봐주고,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엄하게 다스리는 그런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않고, 사랑과 정의로서 세상을 다스리며 판단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 법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불공평합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공금횡령이나 탈세 등의 혐의로 구형을 받으면 한결같이 질병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특별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병세가 악화된 것을 이유로 특사로 풀려납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부유한 자, 학력이 높은 자, 권력을 가진 자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여.. 있는 사람들,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그러면서 그들끼리 하나의 그룹을 만들어 서로 밀어주고, 지원하면서 연결고리를 이러갑니다. 이런 힘의 논리에서는 사회적 약자, 가지지 못한 자, 배우지 못한 자는 소외되며 그들의 권익은 보장 받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불공평한 세상,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피해를 입고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새의 줄기에서 나실 분은 사랑과 공의로 다스립니다. 신명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고아, 과부, 나그네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진멸하실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누구도 약자를 업신여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6~9절을 보면... 에덴동산과 같은 평화로운 아름다운 세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서로 조화할 수 없는 짐승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표범이 어린 염소와, 송아지와 새끼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장난해도 아무 해 됨도 상함이 없는 낙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묘사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왕의 통치가 완전한 평화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해 됨이 없고 상함도 없는...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해 집니까?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함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여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갈 때 평화로운 세상이 가능합니다.

 

이사야가 말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한 싹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새의 아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셔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는 그 날이 오면 이사야가 예언한 그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장차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두 시간의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통치 영역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백성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세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이사야가 보여준 세계와 거리가 멉니다. 정치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직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위정자들과 국민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얼마나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을까요? 하나의 종교로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이런 개념조차 없습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누가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구호를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을 보면 하나님의 방법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와 병폐를 지적하고, 성토하고, 군중들의 힘을 모아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정을 부정한다고 긍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에게 도둑질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정의 부정이 긍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긍정이 긍정을 만들어 냅니다. 그 긍정의 힘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진정한 공의와 평화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공의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 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이 나라에 세워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계획하신 사랑과 공의와 평화의 나라, 행복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주역들이 되어 그 날을 영광스럽게 맞이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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