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4 : 1 ~ 6
제목 / 그 날에
이사야서를 보면 유다 왕국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비교해서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다의 현재 모습은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사야 당시 유다의 모습은 영적 부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미래 모습은 영적 영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지난 시간에 3장을 통하여 이사야 당시 유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코에 호흡이 끊어지면 사라질 인생들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란에 치우쳤습니다. 유다가 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으로 들어오면 유다의 미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1절은 3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 구분을 할 때 3장으로 넣어야 할 것은 4장으로 넣은 것 같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구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3장 16절에서부터 음란한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결국에는 이런 수치를 당하고 슬피 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심판의 때가 오면 장정은 칼에 죽고, 용사들은 전쟁 중에 망하여 혼자 된 여자들이 많아질 것이며, 이 여인들은 4장 1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남편 없는 여자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수치를 면하기 위하여 남자들을 붙잡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것이니 첩이라도 좋으니 자기가 누구의 여인이라고 불릴 수 있도록 만 해 달라고 애원하게 될 것이라 겁니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으로 무너져서 황폐하게 될 유다의 처절한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절로 들어오면 유다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그 날에’ 라는 말로 시작하는 데 ‘그 날’은 유다가 영광을 회복할 미래의 그 날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여호와의 싹” 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싹은 히브리어로 ‘체마흐’ 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가지’, ‘순’ 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 싹은 바로 다윗 집의 그루터기에서 나올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을 보면 여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23:5,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라..”
렘33:15절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사11: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유다의 영광스러운 미래는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으로 이 땅에 임하실 때 시작됩니다.
그러면 그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화로움을 입을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기에 그 땅의 소산 역시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싹을 보면 열매를 알 수 있습니다. 봄에 싹이 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고추 싹이 나면 고추가 자랍니다. 오이 싹이 나면 오이가 자랍니다.
여호와의 싹인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름답고 영화롭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룰 그 나라와 백성들 역시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겁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공의로우셔서 부한 자, 가난한 자,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 강한 자, 약한 자에 대한 차별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치우침이 없이 공의로 판단하시어 공의로운 나라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으로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사11장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하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해도 해함이 없는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공의가 무너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나타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멀쩡하고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옥에 가두는 세상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치료할 수 있는 병도 돈이 없으면 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야 하는 세상입니다. 가난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가슴에는 한이 쌓이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땅을 치며 하소연해도 누구하나 관심하나 가지지 않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는 그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폭력을 휘두르며 횡포를 부리던 자들이 다 사로잡힐 것이며, 지금까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픈 일을 당한 자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며, 모두가 자유롭게 평화를 누리며, 서로 사랑하고, 호의를 베풀고, 존중하고, 진심을 나누는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이런 영광스러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데모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를 높여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바꾼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치하시며 다스릴 때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씻음 받고 거룩함을 덧입게 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원인은 죄입니다.
탐욕과 교만, 지배욕, 불신앙, 불순종과 같은 죄가 인간의 불행을 불러옵니다. 영광스러운 날이 오기 위해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가난의 문제가 왜 발생합니까?
탐욕의 죄 때문입니다.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 필요 이상의 것을 차지하고, 독식하고 있기에 가난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진 자 1%의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1%만 내어놓아도 이 세상에서 기아로 굶어죽는 자는 없어집니다.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환경오염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지구 온난화 현상이 나타내고 곳곳에서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개발행위를 함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환경을 인간이 스스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맑은 공기를 잃어가고 있고, 깨끗한 물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온갖 공해와 오염 속에서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녹지 공간을 얼마나 많이 훼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화학물질로 만든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녹지 공간을 훼손하며 신도시와 같은 곳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2년간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는 숲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육식을 하려면 소나 돼지를 키워야 하는데 이런 육축 한 마리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자동차 1대가 배출하는 가스의 양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훼손하여 심각한 오염문제를 발생시킴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전쟁과 내란, 살인, 폭행, 사기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고통을 줍니다. 인간의 죄악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날이 오기 위해서는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구속의 사역입니다. 친히 속죄양이 되셔서 나무에 달려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고, 영혼마저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가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은혜의 귀중함을 모릅니다. 그래서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죄를 감추고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상상을 뛰어넘는 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죄사함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죄를 씻는 것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열쇠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날을 주시기 위하여 죄를 씻을 수 있는 귀한 날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님 앞에 모든 죄를 고함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음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에는 구름과 연기, 밤에는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고, 또 초막을 두어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만들고,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길을 갈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구름기둥이 뜨거운 태양빛을 막아 줌으로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의 추위를 견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리지 않게 하시고, 4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광야 길을 걸었지만 옷이 헤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어떤 누구도 해할 수 없습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지라도 물이 침몰치 못하며, 불 가운데로 지나도 불이 사르지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십니다.
고후4:8~9절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백성은 누구도 거꾸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당하여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어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고전10:13)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더 완전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악한 사탄의 세력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시험하고 유혹하지만 마지막 주님의 재림이 있고, 모든 사탄의 권세가 무저갱에 갇히게 되는 날엔 어떤 시험이나 유혹도 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날’를 소망하며 기다릴 수 있기 바랍니다.
이 모든 역사가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며, 모든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환난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여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