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이사야 3 : 1 ~ 26
제목 / 예루살렘과 유다가 무너진 이유
지난 주 이사야 2장에서 유다 왕국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았습니다.
유다 왕국의 현재와 미래는 뚜렷한 대조를 보였습니다. 현재 유다의 모습은 영적 부패의 극치를 달리고 있지만 유다의 미래 모습은 영적 영광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현재 상황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기보다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경배하였습니다.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고 언약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다가올 미래의 이스라엘 모습은...
하나님이 모든 만국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열방에서 많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에 올라 시온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확립되어 더 이상 무기가 필요 없어 칼을 보습으로, 창으로 낫을 만들고, 싸우거나 전쟁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3장으로 들어오면 유다 왕국의 현재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힙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예루살렘과 유다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합니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거나 진심을 감추려고 할 때입니다. 이 때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속으로 품고 있는 마음일까요? 겉으로 표현한 말과 행동일까요? 보통 속으로 품고 있는 마음이 그 사람의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진실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타협하며 살아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안 좋은 관행을 따르거나, 술자리에 합석하여 술을 먹는다든지,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직장이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이해하실거야”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과연 이 사람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바깥으로 나타낸 행동일까요? 아니면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일까요? 진실은 바깥으로 나타난 행동입니다. 그 행동을 하는 순간 그 마음은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안 되는 줄 알면서 행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영업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 품은 생각과, 언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먼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하며, 그리고 말과 행동이 마음과 같이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격이 이중적이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눈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무너진 이유가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실을 주의하며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과 유다가 무너진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헛된 것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라.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무엇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의지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였습니다. 먹을 양식을 의지하였습니다. 전쟁의 용사와 전사를 의지하였습니다.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장인과 요술자를 의지하였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이런 것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2:22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생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인생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의 목숨은 끝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도 권력도 지도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인맥을 넓히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많이 알아두면 그 인맥들이 힘이 되고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맥이 자기를 지켜주고 성공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인간의 인맥은 한계가 있습니다. 의지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이 힘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홀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빚더미에 올라서 보십시오.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가까운 친구들도 얼마 있지 않아 다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은 이런 인생들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셔서 이들이 의지하는 것을 다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인생들을 의지했던 그들에게 의지했던 것을 제해버리면 “낭패다. 절망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고 할지 모르나 그들이 겪을 일을 앞당길 뿐입니다. 이것을 겪어봐야 그동안 자신들이 의지했던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좀 더 빨리 깨닫게 될 것입니다.
4~7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이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실 때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관으로 삼을 사람들이 없어 소년을 고관으로 세워 그들이 다스리게 될 것이며, 백성들은 서로 학대하고 잔인하게 해를 입히고, 사회적 질서가 무너져 위아래가 없이 모두가 교만하게 되고, 겉옷이라도 가지고 있는 형제에게 가정을 돌봐줄 것을 부탁하면 이를 거절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권위는 무너져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권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 스승의 권위, 어른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권위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권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권위를 바르게 행사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임의대로 행사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자기 실속만 챙기고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스승이 교사의 도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학부모들을 불러 촌지를 요구하고, 학생들을 차별한다면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권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권위는 이미 그 권위를 상실한 것입니다.
사회의 질서와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진 직무를 감당하고자 할 때 아랫사람들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이 있습니다.
목사의 직분,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 구역장, 교사의 직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직분과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직분을 바르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와 가정이 바르게 질서를 잡고, 권위가 무너지지 않고,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무너진 이유는 음란에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여인이 길거리를 다니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듯 고개를 치켜들고,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어린 아이의 걸음과 같이 잰 걸음으로 걷고 있습니다.
18절 이하를 보면 여인들이 화려하고 사치스런 장식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발목과 팔목에 고리로 장식하고, 귀와 코에 고리를 하는 등 온 몸을 장식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장식품들입니다.
본문에서 보여주는 여인들의 모습은 정숙한 여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바람직한 여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벧전3:3~4절에서...“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딤전2:9~10절에서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정하고 닿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의 모습은...
남편을 잘 내조하고, 자녀들을 바르게 잘 양육하고, 매사에 부지런하게 가사 일을 잘 돌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은 여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을 유혹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그런 식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인의 모습은 이 시대가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했는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이 여인들의 타락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인이 타락하면 가정은 병듭니다. 부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양육이 소홀하게 되며, 가족들의 생활이 불안정해집니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입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합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불안정하면 그 사회 역시 많은 문제가 도출됩니다.
요즘 이 사회를 보면 여인들의 이탈현상이 심각합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사치와 허영에 빠져 가정을 등한히 하고 자기만족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가정파괴 문제, 청소년 문제, 사치풍조 등은 여성들의 타락에 큰 원인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잘 지키고, 가족들을 잘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성들이 역할과 책임을 잘 감당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가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헛된 것을 의지했습니다.
세 번째가 음란에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모습이 이 세 가지입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인생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음란에 치우쳐 꼬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건강한 가정을 세우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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