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10 : 11 ~ 18
제목 /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성경은 죄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그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처음부터 완전한 구원의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구속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완성된 그림을 보여줍니다. 구약이 구속의 원리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는 퍼즐 조각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마지막 완성된 그림과 같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잎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잎이 마르고 쉽게 손상됩니다. 아담과 하와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속의 원리를 보여주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짐승을 희생시켰다는 것입니다. 가죽은 짐승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 아브라함을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칼로 이삭을 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중단시키시고, 이삭 대신에 숫양 하나를 준비시켜 놓으셨다가 그것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여기서도 구속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지만, 뒤에는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숫양이 이삭을 대신한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실 때...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게 되는데 이 중에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 입니다. 이 재앙을 내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은 장자의 죽음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좀 더 분명한 구속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장자를 대신하여 양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양이 장자의 생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에 불러놓고, 이들에게 주신 율법을 보면 속죄제사가 있습니다. 양이나 소나 염소와 같은 짐승을 희생시켜 그 피로 죄를 속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피가 생명이 있으므로, 그 피로서 인간의 죄를 가릴 수 있다는 중요한 원리를 율법에 명시함으로 그 원리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렇듯 구약에서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완성된 구원의 그림이 아닙니다. 구원의 원리는 신약에 넘어와서 완전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피 흘리심으로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고, 이로써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불완전한 구약의 제사와 비교하여 예수님의 희생 제사가 완전한 구원의 성취임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온전하게 하다”는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
히2:10절에서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고 하였습니다.
히5:8,9절을 보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고 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서 온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계시며, 동시에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충족시켰습니다.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는 분으로 속죄 제물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셨습니다. 온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주권자로서.. 모든 인류의 대속물로서도 완전한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온전한 자격을 갖추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인류를 위해 속죄 제물로 드리심으로 구원을 위해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셨던 말씀처럼 ‘다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온전하다고 말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그 온전함을 구속받은 백성들에게 적용합니다. 14절입니다.
“그가 거룩하게 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원자로서 온전하신 예수님이... 구속하신 백성들을 온전하게 하셨다’ 는 히브리서의 메시지는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온전하게 하다’ 는 헬라어로 ‘테텔레이오켄’ 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를 예수님에게 적용하여 사용하다가... 구원의 백성에게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 온전하게 되지 못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구원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이 온전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구원이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14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문장대로 해석하면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예수님께서 한 번의 제사를 드리심으로 온전하게 하셨다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된 자를 위해서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죄 제사를 드려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구속하시기 전에 거룩하게 된 자는 없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온전하게 하셨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거룩하게 된 자”와 “영원히 온전하게 한 자”는 같은 사람입니다.
거룩하게 된 자들이... 곧 온전하게 된 자들입니다.
한 번의 제사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백성을... 거룩한 자, 곧 온전한 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의미상으로 동격입니다.
그러면 온전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곧 거룩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온전한 구속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백성은... 거룩함으로 온전해 집니다.
‘거룩’의 근본 의미는 ‘구별’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은 일반 물건과 다르게 사용합니다. 오직 성전에서 하나님을 제사하는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구별된 물건을 거룩한 물건, 성물(聖物)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자입니다. 제사장은 세속일과 성전 일을 병행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전에서 하나님만 섬깁니다. 그래서 제사장을 성직(聖職)이라고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구별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구별된 자입니다. 거룩한 자로 살아가도록 구별된 자입니다.
구원의 백성이 가져야 자의식이 있습니다. ‘거룩한 직분을 받았다’는 의식입니다. 우리는 제사장과 같이 거룩한 지위와 직분을 받은 자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순간... 거룩한 직분을 받았습니다. 벧전2:9절을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기 바랍니다.
“나는 거룩한 직분자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옆의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직분자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거룩한 직분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진다고 하여서 처음부터 거룩하게 될 수 없습니다.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고 하여서 처음부터 목사로서 온전하게 자기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안수받기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라는 신분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점차 목사다운 목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직분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진다고 하여서 처음부터 거룩하게 될 수는 없지만... 이 의식이 분명하면 점차 거룩한 자로 변화됩니다.
대제사장은 머리에 관을 썼습니다. 그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관을 쓸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할지를 되새겼을 겁니다.
우리 또한 날마다 거룩한 직분을 맡은 제사장이라는 의식과 함께 “여호와께 성결해야 한다” 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온전함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셨고,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을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거룩하고 온전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분명히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만 점차 자라면서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만약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이전 모습 그대로 있다면.. 아직 구속의 은혜를 받지 아니한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거룩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거룩함과 온전함은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강력한 눙력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17절을 보면... 성령께서 증언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성령이 증언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증언하신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두시겠다는 것과 그들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36:26,27절을 보면 이 증언이 나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도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즐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새 영을 주시고, 그 성령께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약속하신 중언대로 하나님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두어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죄의 용서를 말합니다.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죄인이라는 딱지를 땔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여지고 온전하여 진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원하시는 것이 정말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아름다운 것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우리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헛된 욕망을 추구하면... 욕심이 그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좇아 살면서 그 인생이 병들어 갑니다. 재산을 늘리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나... 욕망에 사로잡혀 온갖 죄로 얼룩진 그 인생은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잃고, 이웃을 잃고, 양심을 잃고, 인생의 본분을 잃어버린 그 인생은 호화로운 궁궐 속에서 살아간다하더라도 추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간절히 바라야 할 소망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입니다. 정결함입니다. 인자함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으로 온전해 질 때 우리의 인생은 정말 아름다울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빛날 것입니다. 향기를 발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름답고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함을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의로움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삶으로 온전하여 질 때... 여러분의 삶이 빛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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