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9 : 23 ~ 28
제목 / 완전한 속죄
지난 두 번의 시간에 걸쳐 ‘그리스도의 피’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육체뿐만 아니라 양심까지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첫 언약 때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고 했는데...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함으로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 속량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주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회복이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구속사역,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리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가, 마지막 날 구원의 주로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앞의 22절에서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며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것은 피로써만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정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선행을 많이 한다고 하여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피로써만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입니다. 롬6: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 값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마25:46절을 보면 “죄인은 영벌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밥이 목에 넘어가겠습니까? 마음의 평안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죄를 씻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피’입니다. 피로써 죄를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레17:11절을 보십시오. (구약173)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왜 피가 죄를 정결하게 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어디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피’입니다.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피를 뿌린다는 것은 곧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피를 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죽이지 않은 생명의 피는 효력이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의 삯으로 생명을 바치면(피를 뿌리면)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하반절에서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단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제물은 각을 떠서 불로 태워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23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구약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23절의 말씀은... 하늘 성전의 모형인 ‘성전’에서는 짐승의 피를 흘려 정결하게 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하늘의 성전에서는 짐승의 제물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성전이 하늘 성전의 모형이라면... 구약에서 드렸던 짐승의 피도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이 완전한 성전이 아니듯이 짐승의 피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 피는 육체를 정결하게 할 수 있으나 양심과 마음, 영혼을 정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 효과가 부분적입니다. 일시적입니다.
모형이 아닌 하나님이 계신 진정한 하늘 성전에서 드려야 할 더 좋은 제물은 무엇일까요?
2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디에 들어가셨다고 합니까?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하늘(하늘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24절에서 하늘 성전에 드려야 할 더 좋은 제물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전에 들어가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늘 성전에 드려진 ‘더 좋은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한 제사, 완성된 제사를 봅니다.
구약의 제사는 모형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사장이 들어갔던 성소도 하늘 성전의 모형이고, 제사장이 드렸던 짐승의 피도 상징적이고, 제사장이 드린 제사도 모형입니다.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실체입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곳은 모형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하늘 성소입니다. 피도 상징적인 짐승의 피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의 생명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제사입니다. 완성된 제사입니다.
25,26절을 보면... 예수님이 드린 제사가 완전한 제사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제사를 여러 번 드렸습니까? 한 번 드렸습니까?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 같이 해마다 반복해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반복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고 피 흘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사는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에 한 번으로 끝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드린 제사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후로도 계속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린 피의 제사가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10:18을 보면... “...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사가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비롯해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사가 실패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없었을 겁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실패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오면... 그 제사는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죽으면... 그 제사는 실패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성소 밖으로 나왔을 때... 모두 기뻐하며 좋아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속죄 제사를 드리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여 부활의 몸을 보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제사가 성공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드린 속죄제사는 완전합니다. Perfect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드려야 할 제사가 없습니다.
이단들이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불완전하다고 하며 자신들이 그 부족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완전한 제사입니다. 더 이상 필요한 속죄제사는 없습니다. 더 이상 추가되어야 할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사로 속죄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이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소에는 떡상, 등잔대, 분향단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떡상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등잔대는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의미합니다. 분향단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사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찬을 통하여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으로 나와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소원을 아뢰며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는 법궤가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 옆에는 율법을 기록한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의 결정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청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특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갖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사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28절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것이 초림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늘로 승천하시는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는 각각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신 목적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속죄사역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속죄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속죄한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그래서 죄인은 영벌에 처하고, 의인은 영생이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구속하신 자들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初臨)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재림(再臨)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만약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이 다르다고 한다면... 많이 불안할 겁니다. 심판관이 예수님의 속죄를 과연 인정할까? 심판하시는 분의 구원의 기준이 다르다면 어떻게 되나? 하는 염려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속죄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날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안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열쇠는 예수님이 쥐고 있습니다. 구원을 결정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구원을 위해 누구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구원을 완성하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오셔서 자신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구원하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믿어야 할 믿음의 주가 되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임을 믿어 영생을 얻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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