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7 : 20 ~ 28
제목 / 영원한 대제사장
2 주간에 걸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과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을 비교하며, 예수님의 우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복을 받은 사실을 두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고, 아브라함의 씨에서 나온 아론의 후손이 제사장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론의 후손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것은... 아론의 혈통을 지닌 제사장들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온전했다면 또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전한 제사장이므로 그 후에 다른 제사장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들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의 방식을 따라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는 죄를 사하는 효력은 있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도 또 다시 죄를 짓고, 또 다시 제사를 드리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완전한 제사를 드렸고,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또 다른 측면을 제시하며 예수님의 우월성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었지만,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맹세 없이 되었다고 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다” 고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사장이 된 것은 맹세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 말을 한 것일까요?
시편110편 4절입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하나님은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맹세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맹세하신 내용을 밝힙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두고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 이라고 맹세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이를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구약의 제사장)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되셨다. 하나님은 맹세하신 것에 대하여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가리켜 “네가 영원한 제사장” 이라고 맹세하셨다.
그러므로 22절을 보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고 합니다. ‘하나님의 맹세가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보통 계약을 하거나 약정을 할 때 서류를 만들어 도장을 찍고 공증을 함으로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로서 약속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신의(信義)에 근거해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럴 때 “너는 그 때 말로서 약속해 놓고 왜 지키지 않느냐?”고 추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맹세하신 것을 결코 어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류를 만들어 도장을 찍고 공증을 하지 않더라도 그 맹세가 언약의 보증이 됩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 언약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지게를 두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서류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하신 무지게 언약입니다. 입으로 하셨지만 서류로 한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네가 영원한 제사장” 이라고 맹세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증하는’ 영원한 제사장,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입니다.
23,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보충해서 설명합니다.
아론의 혈통을 따르는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는데... 그렇게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들은 죽기 때문에 영원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사장을 계속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지 않고 영원히 계시므로 제사장 직분도 영원히 존속 가능합니다.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온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붙잡아야 할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맹세로 보중하신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누구도 제사장으로 보증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온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25절을 다시 주목해서 보십시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온전히’입니다. 1%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이단들은 예수님의 구원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며, 그 구원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교주들을 내세웁니다. 이들의 주장은 오늘 본문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온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한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입니다.
롬3:16,17절을 보면...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 파멸과 고생이라는 험난한 길 때문에 평강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죄로 인하 파멸과 고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해답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을 요청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25절 하반절을 보면...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도우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맹세를 어기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낙심하여 슬피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믿음을 가질 용기가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아니하고 훌륭한 전도자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22:31~32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베드로를 위한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가 있었기에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할 수 있기 바랍니다.
26~28절은 구약의 제사장들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예수님이 합당하신 대제사장임을 밝힙니다.
26을 보면...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가? 26절에서 그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 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악이 없고, 자신에 대하여 더러움이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하고, 악하고, 깨끗하지 못한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 대제사장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복장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관포 속옷과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을 입고, 가슴에 12보석이 박힌 흉패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적인 관을 쓰고, 허리에를 띠를 띠었습니다. 제사장의 복장은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 입힌 옷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복장을 입기 전에 물로 자신을 씻어야 했고, 복장을 취하고 난 후에는 염소 두 마리를 취하여 한 마리의 머리에 안수하며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켜 광야로 보냈습니다. 이 염소를 ‘아사셀’ 염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백성들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을 위해 짐승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고 난 후에야 대제사장은 희생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 옷에다 방울을 달아 제사장의 생사를 바깥에서 확인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복장을 갖추고, 물로 씻고,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방울소리를 내며 지성소로 들어갔다는 것은 대제사장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다면 이런 의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제사장도 죄인이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깨끗했기 때문에 다른 절차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율법은 (구약의 제사는) 약점을 가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나 율법 후에(신약 시대)는 영원히 온전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비교를 통하여 예수님이 구약의 제사장보다 온전하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6절로 돌아가보면... 하반절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계신 이라” 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에 하늘 위에 있는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년에 한 차례 지성소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 구약의 대제사장과 비교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 성소에 완전히 들어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모든 면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완벽한 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제사장으로 ‘합당하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보증하시는 온전하신 대제사장입니다. 이 예수님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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