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7 : 11 ~ 19
제목 / 새 법, 새 언약
히브리서는 유대교보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가 더 온전하다는 것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입증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우수성을 깨우쳐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과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을 비교하며, 예수님이 더 높다는 것을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아론의 혈통을 이은 제사장보다 높다고 한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론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다” 고 하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았으니 당연히 멜기세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보다 높다고 하며,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우수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다른 논리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이 아론의 혈통인 제사장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 은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을 말합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분이 온전하다면... 어떻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그리스도)를 세울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하며... 아론의 혈통을 따른 제사장들이 온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제사장직이 필요했다는 것은 옛 제사장직이 불완전했다는 말입니다.
제사장직과 제사는 율법이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짓게 하시고, 제사장을 세워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과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비춰주는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제사인 반면에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십자가의 제사는 단 한 번이었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반복되었던 이유는 그 제사가 불완전하였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단 한 번의 제사를 드린 것은 그 제사가 완전한 것이었기에 더 이상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론의 혈통을 이은 제사장이 드린 제사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린 제사가 더 온전하고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십계명(도덕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법은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을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 확고하게 강화하였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였으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였으나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간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계명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강화하였습니다.
12절에서 말하는 율법은 ‘구원의 방식으로서의 법’입니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라”는 말씀은 제사장이 아론의 후손들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예수님으로 바뀌었으므로 구원을 이루는 법, 구원의 경륜도 바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뀐 것일까요?
16,17절을 보십시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 을 따라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은 율법을 말합니다.
아론의 제사장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하여, 제사를 집례를 하는 것은 ‘율법이 정한 바에 따른 것’입니다. ‘외적인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죄를 짓고 죄를 씻기 위해 오는 자들에게 율법이 정한 대로 속죄제, 속건제와 같은 제사를 드려 그 죄를 속죄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오직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다’ 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은 예수님 자신의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영적인 거듭남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지니신 불멸의 생명의 능력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율법에 근거한 제사장이 드리는 구약의 제사는... 죄를 씻는 기능은 하지만... 그 제사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타고난 죄성을 고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도 또 다시 죄를 짓고 그래서 또 다시 제사를 드리는 식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다시 반복해서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로 없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하십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전에 있던 계명’(옛 계명)을 두고 “연약하다. 무익하다. 폐한다.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한다” 고 합니다. 옛 계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옛 계명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도록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율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이 지닌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하나님이 제시하는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하게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 지난 중요한 역할입니다.
바울은 롬7:12절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의롭습니다. 선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본성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 는 다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누울 것이라는 이사야 11장의 말씀을 동물원에 있는 사자에게 읽어 줘 보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자는 어린 양과 함께 뛰놀아야 한다.” 고 하였다. 그러면 사자가 어떻게 반응할까? 사자는 어린 양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자는 그 어린 양을 잡아먹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자는 어린 양과 함께 뛰어 놀아야 한다고 사자에게 말해 주었는데 왜 사자는 어린 양을 잡아먹었을까? 그 이유는 사자의 야성적인 본능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자는 맹수로서의 본능이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에 어린 양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자가 양과 함께 지내려면... 사자의 본성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린 양과 함께 뛰놀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율법이 지닌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율법적으로 자녀를 가르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해라! 씻으라! 일찍 일어나라! 미리 준비해라! 시간을 아끼라! 성실하게 열심히 생활에 최선을 다해라!”
다 자녀에게 필요한 말이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여 자녀들이 부모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녀들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면서도 못합니다.
왜요? 이를 행할 능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잔소리가 아니라 자녀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 관리와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마음을 먹도록 동기유발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행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아무리 해라! 하지마라! 고 말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받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악하고 타락한 본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렘31:31,32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언약과 같지 않은 ‘새 언약’ 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33절을 보면...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새 언약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두겠다고 하십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6,27)
여기서 새 언약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돌판에 새겨 백성들로 하여금 그 법의 내용을 알게 하였지만... 새 언약은 마음에 새깁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여 부드러움 마음을 주고,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을 두고, 새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어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얻어 하나님께서 주신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백성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후4:16절에서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과 열정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래서 이전에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 받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그 능력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단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주님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있습니까?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진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새 언약의 백성으로 이러한 단계에 이르려면... 새 언약의 중심이 되신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그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 삶의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생명의 능력이 되신 예수님의 도우심과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주셔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마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변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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