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6 : 9 ~ 12
제목 / 구원의 확신과 소망
지난 시간 4~8절 말씀에서 신앙의 터를 견고하게 하지 않을 때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고, 안수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맛보았다고 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열매가 있습니다.
7,8절 말씀에서 “비를 흡수하여 합당한 채소를 내면 복을 받고, 가시와 엉컹퀴를 내면 버림을 당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열매를 맺느냐를 보면 그 신앙이 참된지 거짓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나는 구원의 진리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평생에 걸쳐 연구하며 구원의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내가 보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깨닫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면서... 그 하나님으로 인해 점점 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으로 들어오면...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온 히브리 성도들에게 “너희가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 고 말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는 앞의 4~8절에서 말씀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러나 “너희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 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을 근거로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하였을까요?
앞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수신자들을 향해... 신앙생활한 지가 오래되어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 하나,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고, 선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터가 견고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가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하였을까요? 그 근거가 무엇일까요?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근거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성도들에게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에게서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모습’ 을 보고 구원에 속한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앞의 7,8절에서 맺는 열매를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구원의 백성인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버림받은 백성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보니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근거로 구원에 속하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열매로서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섬기라고 말하면 내가 왜 남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나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구원의 백성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마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 날에 있을 일을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편에 앉은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사랑으로 섬긴 자들입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헐벗은 자, 갇힌 자, 나그네와 병자를 섬긴 자들입니다.
이제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의 가족 외에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누구를 섬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직까지 구원의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섬김의 본을 보인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으로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바랍니다.
두 번째, 히브리 성도들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입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사랑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으로 섬긴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인 구원의 백성들의 죄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히8:12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고 충성하며 의로운 행위를 한 것은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생각할 때... 자녀들이 잘못한 일이 생각납니까? 자녀들이 잘 한 일이 생각납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은 자녀들이 비록 잘못하고 서운한 행동을 했더라도 이를 기억하지 않고, 자녀들이 잘한 일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원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의로운 행위를 기억하시며 축복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랑에 근거하여 히브리 성도들의 구원을 확신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섬긴 일을 기억하신 것을 구원의 확신의 근거로 삼았다고 하여서... 히브리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가 구원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강단에서 종종 말씀 드렸지만... 의로운 행위가 구원의 방법이 아닙니다. 의로운 행위는 구원받은 백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열매이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행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행위를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백성들에게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행하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이를 귀하게 여기시며, 귀한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의의 열매, 선한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귀한 상급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열매를 맺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귀한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1,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히브리 성도들이 ‘소망의 풍성함’ 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면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소망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 꼭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소망의 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의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그들이 세계 모든 나라의 복의 통로가 되는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지서들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주시며 소망을 품게 하였습니다.
이 소망을 간절히 바라고, 이 소망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믿음의 길을 가기 어렵습니다.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이 소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소망, 천국의 소망을 간절히 바라며,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소망의 풍성함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 부지런함과 믿음과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의 마음에서 소망이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게으르면 우리 마음의 소망도 희미해집니다.
학생들 중에서도 열심히 인내하며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공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금 눈앞에 즐거움을 찾고 편한 대로 지내려고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들 학생들 중에서 어떤 학생이 자기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인내하며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미래에 대한 소망이 더 커집니다.
그러나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는 학생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만 커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같은 원리입니다. 인내로서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며 주의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소망이 더욱 커지고 확신에 찹니다.
노력과 소망은 비례합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소망은 점점 더 커지고, 소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이런 상승작용이 일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선조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12절 하반절을 보면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히12장을 보면 믿음의 선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 외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열거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상급을 받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이런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고, 더 큰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바라보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겼기에 놀라운 상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도전을 받고,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과 같은 자산가. 오바마, 시진핑과 같은 정치가, 스포츠 스타, 유명 연예인 이들의 영광은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가면 믿음의 영웅들이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소망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믿음의 길을 부지런히 달려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상급을 받아 큰 영광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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