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5 : 11 ~ 6 : 3
제목 / 성장하십시오!
지난 시간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근원이 되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구원의 기준은 의(義)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함과 의를 완전히 갖추지 않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데 있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스스로 완전한 의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죄인이 받아야 하는 공의의 심판을 십자가상에서 직접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 보좌에 오르게 하셔서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인정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5:9절을 보면... “...자기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구원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구원의 근원이심을 아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여 신앙의 터를 견고하게 쌓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11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댁에 관하여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여 설명하기 어렵다며... 애로사항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학문에는 기초가 있습니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 단계 이상의 것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수업 분위기를 보면 태반 이상이 수업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 청을 피웁니다. 가장 큰 이유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하기를 못하는 사람은 곱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빼기를 못하는 사람은 나눗셈을 할 수 없습니다. 곱하기 나누기를 못하면 방정식과 함수를 풀 수 없고, 더 이상의 수학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영어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깊이 있는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쉽게 요동하고 흔들려 이단에 빠져들거나 신앙의 뿌리가 쉽게 뽑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견고한 신앙의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일을 소홀히 하면 시간이 지나도 어린 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때가 오래 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면 선생이 되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까지도 신앙의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라는 말입니다. 세월은 지났으나 아직도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어야 하는 수준에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익숙해지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생활을 오래하면 교회에 익숙해집니다. 예배가 어떤 순서로 드리는지, 교회가 어떻게 조직이 되어 있는지, 교회가 어떻게 결정하고 움직이는지,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하게 압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인 성장은 아닙니다. 익숙함과 영적인 성장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학력고사를 보듯 시험을 봐서 여러분의 이해수준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마 시험을 보라고 하면 이를 거부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체계 있게 알고 있는지... 만약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영적 훈련을 쌓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엡4:13,14절을 보면...“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진리의 터가 견고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며 요동합니다.
교회를 진단하는 전문가들이 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우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의 불균형입니다. 신앙의 지·정·의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의 출입문은 지(知)입니다. 신앙은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을 때... 그 말씀이 내 생각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말씀이 내 생각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간혹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더 이상은 필요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위험한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릅니다.
· 신앙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뜻을 깨닫지 못해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없습니다. 마땅히 선생이 되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가정과 자녀를 신앙으로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 영적 분별력이 없어 이단에 쉽게 빠집니다. 이단들은 자신들끼리 똘똘 뭉치는 결속력이 강합니다. 신천지를 보십시오. 혈육까지 외면하고 자신들끼리 뭉쳐 있습니다. 기존 교회보다 훨씬 더 충성심과 헌신도가 높습니다. 감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단이 더 열정이 있고, 뜨겁습니다.
딤후3:13,14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분변할 수 있어야 속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여 진리를 깨닫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배움은 쉽게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평생 노력해야 합니다. 아는 만큼 성숙할 수 있고, 깨닫는 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열심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6장 1~3절의 말씀은 어떻게 신앙의 기초를 쌓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1,2절 말씀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
둘째, 1,2절에 나오는 6가지를 완전하게 하고, 반복하지 말라!
첫째,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말씀은... 앞에서 언급했던 미성숙한 어린 아이의 신앙 수준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둘째가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고 했는데 “다시 닦지 말라” 는 말은 다시 반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뒤에 나오는 4~6절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하나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하였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서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고 회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앞의 2절에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고 했는데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부실하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 건물 전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이 ‘부실공사’ 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기초를 놓는데 부실하면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서도 다시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초를 쌓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완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그 위에 아름다운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쌓아야 할 신앙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보면 모두 여섯 가지가 나옵니다.
1) 죽은 행실을 회개함 2) 하나님께 대한 신앙
3) 세례들 4) 안수
5) 죽은 자의 부활 6)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두 가지씩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쌍은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떠나’ ‘가는’ 것입니다. 먼저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을 성공적으로 하면 좋은 신앙의 터를 쌓을 수 있습니다.
떠나야 하는 것은 ‘죽은 행실’입니다. ‘죽은 행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욕망과 죄악에 치우쳐 행하던 행실을 말합니다. ‘옛 생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야 합니다. 옛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거룩한 곳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가야할 곳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멀리했던 생활에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됩니다. 되돌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 쌍은 ‘세례와 안수’입니다.
세례를 베풀 때 머리에 손을 얹고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는 물이 있는 강가로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안수는 성령의 임함을 의미합니다. 안수는 성령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8:9절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신앙인으로서 구별된 성도의 삶이 가능합니다.
세 번째 쌍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우리가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할 소망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심판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반면,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는 자들은 죄 때문에 정죄를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을 때... 온전한 믿음의 삶이 가능합니다. 이를 소망하지 않으면...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다시 죄악의 길로 들어서기 쉽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소망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가 견고하게 쌓아야 하는 신앙의 기초는 여섯 가지입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와 안수,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이 기초 위에 여러분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영광의 날을 맞이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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