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4 : 12 ~ 13
제목 /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지난 시간 안식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이 지니는 의미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 정도로 완성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완전한 세계에서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안식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과 모든 피조물도 이 안식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이 안식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이 안식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완전했던 세계가 깨어지고 안식도 깨어졌습니다.
이 깨어진 안식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이 구원의 날이 성취되는 순간 또 다시 우리 모두는 안식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안식의 날을 소망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안식의 날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안식의 날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난 시간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약은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을 통하여 구원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 세대들이 모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갔지만 출애굽 1세대 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 나머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19절에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4:3절 말씀을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라고 합니다.
믿는 자가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5,6절에서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까?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믿음과 순종’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7절에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기에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오면...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2002년에 발간되어 큰 반응을 불러왔던 ‘에모토 마사루’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물을 떠다 놓고... 사랑한다. 좋아한다. 행복해. 기쁘다. 와 같은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가 아주 아름답게 나옵니다.
반대로 미워해, 증오해, 짜증나, 나쁘다와 같은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가 깨어진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물도 말에 반응한다는 것이고, 말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실험은 2009년 MBC방송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밥을 해서 세 그릇에 나누어 담고... 한 그릇에게는 사랑한다 좋아한다와 같은 말을 계속하고, 한 그릇에게는 죽인다. 미워해, 증오해 와 같은 말을 계속하고, 한 그릇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렇게 1개월 동안 계속하였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면... 좋은 말을 한 그릇에 담긴 밥은 크게 부식되지 않고 유지된 반면, 욕을 하고 나쁜 말을 한 그릇에 담긴 밥은 크게 부식하여 냄새가 심하게 났고, 아무 말로 하지 않는 그릇에 담긴 밥은 어느 정도 부패하여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이 실험 역시 말이 미치는 영향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식물이나 가축을 키울 때도 똑같은 결과나 나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떨까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그 영향이 더 큽니다. 여러분 자녀들과 가족들, 교우들 간에 좋은 말을 많이 주고받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말이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면... 하나님이 말씀은 어떨까요?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엇으로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어라!”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예고하시면 그 말씀대로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회복을 예고하시면 그 말씀대로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말씀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딤후3:16,17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10대의 얼굴이 80대가 되어도 남아 있는 것처럼... 사람의 심성, 습관, 행동도 그대로 지속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10년이 지나면 바뀔까요? 조금씩 바뀌기는 하겠지만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냥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변화를 시키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찬송가를 작사한 분 중에 ‘존 뉴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뉴튼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 영국 해군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에서 뉴튼은 죄의 길에 빠져들어 군대를 탈영하여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노예상인이 되었습니다. 이 생활을 하던 중 파란만장한 생활을 경험합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바다로 도망을 치기도 하고, 항해 중에 술에 취해 있다가 바다에 던져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해를 하다가 큰 풍랑을 만납니다. 살기 위해 결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던 중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나서 다시 교회로 돌아옵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180도 선회를 합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후 신학공부를 시작하였고 경건한 청교도 목사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담아 지는 찬송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입니다.
뉴튼의 생애에서 보듯이 그가 하나님 곁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노예로 팔던 사람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뉴튼과 같은 변화의 간증은 교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이랬는데...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이렇게 변했다는 이야기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간증일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검으로 비유하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엡 6장을 보면...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였습니다.
계1:16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 묘사할 때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검’으로 묘사한 것은 말씀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능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꿰뚫어 보는 능력,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죄를 자각하게 만듭니다.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있고,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 자랑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교만한 모습을 자신이 잘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것을 자신이 마친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것을 집념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것을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바르고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될 때 자신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타락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눈을 감고 귀를 닫지 아니하는 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기에 그 말씀이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나의 죄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증세를 느끼도록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도록 하여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자신의 죄가 깨달아지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에게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죄사함의 은혜를 입고 새롭게 되는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12절 하반절을 보면...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뜻이 과연 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한다는 말씀입니다.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비행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던 중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이들 중에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반성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청소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걸까? 하는 것을 가지고 연구하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바른 판단 기준을 가지고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기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시인을 하고 반성도 하지만...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이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그들의 판단 기준을 알아보는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이것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럴 때 잘못된 기준을 교정해야 합니다. 이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장로교 신조 제1항을 보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입니다. 정확무오(正確無誤)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틀림이 벗고 실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판단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온전해 질 수 있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으니 그르니 하며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며 불신앙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들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틀렸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 말씀 위에 있으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변화가 없습니다. 바른 신앙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최후의 심판을 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고 판단하실 때... 내 생각 내 기준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십니다. 그 기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가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면...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온전해 집니다.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무오한 신앙과 행동의 기준임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여러분에게 부어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