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4 : 6 ~ 11
제목 /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오늘 본문은 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이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본문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구원의 성취’를 말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이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7일째 되는 날 안식을 하셨습니다.
이 안식의 날은 하나님이 구상하셨던 세계가 완성된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의 날을 맞이하셨고, 모든 피조물도 이 안식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모두가 이 안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완수하셨고, 모든 피조물들이 이 안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완전했던 세계가 깨어지고, 안식도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깨어진 안식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날이 성취되는 순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날, 안식의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안식의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 안식의 날에 들어가기 위해 인내하며, 안식의 날에 들어갈 때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그러면 이 안식의 날에 들어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안식의 날을 소망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3:19절에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 했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출애굽 1세대들의 대부분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조그만 힘든 일을 만나면 두려워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이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약속 받았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그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날, 안식의 날입니다. 이 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수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아니하면 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까?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누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까?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복음 전함을 받았습니까? 받지 않았습니까? 이들은 먼저 받았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앞서 받았으나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3절에서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믿는 자” 들입니다. 6절에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해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의문을 품지 않습니까? 내 마음이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면 좋아하고, 기쁨과 감동이 없으면 무반응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 기쁨과 감동을 기대합니까?
부모님의 말씀이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하시는 말씀인 줄을 알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은 순종입니다.
7절 중반절부터 보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마음이 완고한 것입니까?
자기 고집이 센 것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것입니다. 자기 의가 강한 것입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며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려 합니다.
이런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고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완고한 편입니까? 순종적입니까? 완고한 마음을 꺾고... 온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 때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한 분도 빠짐없이 순종의 믿음을 가져 안식의 날에 다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었다는 말입니까? 안식을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다른 안식의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을텐데... 다른 안식의 날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입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궁극적인 안식의 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나안 입성은 안식의 모형이지, 원형은 아닙니다. 가나안 입성은... 구약에서 보여주는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맛보기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고 하였습니다.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 는 말씀은 안식의 때가 이미 성취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미래형입니다. 이 날은 구원의 날이 성취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 날에 완전한 안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안식의 현재형을 말씀합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가 하나님이 안식하심과 같이 안식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9절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9절에서는 안식의 날이 미래형으로 장차 이루어질 날이라고 하였는데... 10절에서는 이미 안식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현재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안식의 두 가지 차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실현된 종말론’ 이라고 합니다.
종말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런데 그 종말이 실현되었다는 뜻에서 “실현된 종말론” 이라고 합니다. 이 말 자체가 모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구원의 미래적 성격과 현재적 성격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분명히 미래에 이루어집니다.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과 안식을 현재에서도 누립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과 안식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올림픽에서 하나 달라진 것이 시합을 하는 곳과 시상을 하는 곳이 달랐습니다. 시합은 운동장에서 하는데... 시상은 시상식장에서 합니다. 아마 약물 사용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운동장에서 1등을 한 사람은 시상식장에 가면 금메달을 받습니다. 이 사람의 기쁨은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금메달을 받고 나서일까요? 1등을 한 순간부터 일까요?
1등을 한 순간부터 그의 기쁨은 시작됩니다. 아직 금메달을 받지 않았어도 금메달을 받은 것과 똑같은 기쁨을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장차 안식의 날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스도를 믿고 안식의 날에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순간부터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안식의 날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기쁨을 경험합니다. 이미 이곳에서부터 영생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안식의 날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열악합니다. 가난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질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그 고통과 눈물 너머에 영원한 안식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미래의 완성될 안식의 날을 바라보며, 현재에 안식의 기쁨을 누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게 될 때 더 이상 불순중이나 불신앙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구원이 성취되는 날... 여러분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확신합니까?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지금부터 구원과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세상의 미혹이나 핍박에도 넘어지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큰 힘입니다.
우리가 장차 안식의 날을 맞이할 것을 확신하며... 지금부터 안식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증거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의 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 안식의 날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킴으로 안식의 기쁨을 현재의 자리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리처드 필립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일주일에 한 번 안식의 날을 구별하여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의지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고 하였습니다.
10,11절을 보면...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고 안식에 참여한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실 안식의 날을 믿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고백이며, 현재의 자리에서 이 안식의 기쁨을 맛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 안식의 기쁨을 미리 맛보며, 그 기쁨으로 오늘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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