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4 : 1 ~ 5
제목 / 마지막 안식에 들어가려면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3:19절에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똑같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40년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인 가나안 입성에는 출애굽 1세대들의 대부분이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비록 광야와 같은 힘든 시기를 보낸다 하더라도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믿음생활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게 됩니다. 광야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견뎌내지 못합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터뜨립니다.
구원에도 시제가 있습니다. 구원에는 완료형의 구원, 현재진행형의 구원, 미래형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출애굽은 과거형 내지 완료형의 구원입니다. 광야생활은 현재형 또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미래형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출애굽하였다고 하여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마음을 놓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 1절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러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았다 하더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두려워하며 삼가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성취’를 ‘안식’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장차 얻게 될 구원의 날은 안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안식이 무엇입니까? 그냥 쉬는 날이 아닙니다. 공휴일과 같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안식이란?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완전한 안전이 확보된 날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날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제 칠일 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셨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의 날은 하나님이 구상하셨던 세계가 완성된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의 날을 맞이하셨고, 모든 피조물도 이 안식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모두가 이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완수하셨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이 이 안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전한 세계가 파괴도고 말았습니다. 다시 구원이 완전히 성취하기 전까지는 이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불완전합니다. 평화가 깨어진 상태입니다.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결핍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성취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요16:33) 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모르면...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데 왜 시련이 닥치고, 환난을 당하느냐고 항변하며... 불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중간에 이탈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끝까지 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이 성취되는 그 날을 맞이하기까지는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시련이 있습니다. 환난이 닥칩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엄청난 핍박과 억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여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의 백성이 되었으나... 아직 구원의 날을 맞이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성취는 미래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구원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구원의 여정에 있는 우리가 겪는 시련이나 핍박이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으면... 시련이나 핍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쉽게 낙심하고 실족합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가나안에 대한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부가 들어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나안 입성에 실패한 것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조그만 어려운 일을 닥쳐도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대항하였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이 광야생활 할 때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하나님을 불신하였으니 위기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겁니다. 이러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안절부절 하며 불안해했을 겁니다.
이런 상태로서는 구원의 여정 중에 있어도 기쁨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2절을 보면... “그들과 같이 우리도...” 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믿음이 없으면... 그들이 겪었던 것을 똑같이 겪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마지막까지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불안에 떨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안절부절 하다가 견디지 못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3절을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 가는도다” 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안절부절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힘든 순간을 맞이합니다.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유가 없이 정해진 군대의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잠을 자지 못하고, 어떤 때는 추위와 싸워야 합니다.
이 때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군생활에 잘 적응하여 이를 잘 극복할 수도 있고, 군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힘들게 군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토방위를 든든히 하기 위해 이 정도의 훈련은 감수해야 하며, 강도 높은 훈련이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 것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군생활을 잘 적응하여 유익한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내가 왜 이런 힘든 일을 해야 하느냐? 나라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정말 군대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면... 군대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군생활하는 내내 불만이 가득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는 사람은... 구원의 여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이것이 나에게 유익이라 생각하며 이를 잘 이겨낼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구원의 여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견디지를 못하여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을 성취하시고 구원의 날을 맞이하도록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반신반의하며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 발은 담고 한 발은 빼고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에서 산을 옮기는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히11: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어 유대 민족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고, 본토 친천 아비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후에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따랐기에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나의 생각과 계획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히11:1절을 보면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됩니다.
T.V 가 처음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T.V와 같은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기계를 만들고자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T.V가 세상에 나오고 실용화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시작은 바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자신의 신변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애굽, 그랄) 그리고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몸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브라함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성공적인 신앙생활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할 때... 서로를 믿는 팀p이 중요합니다. 동료선수를 믿지 못하면 팀이 하나가 되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한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과 좋은 한 팀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손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흔들리지 아니하는 견고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마지막 구원의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믿음을 가지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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