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히브리서 3 : 12 ~ 19
제목 / 마지막 믿음의 승리자가 되라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며, 모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에 대하여 오해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믿음을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으면 구원의 보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입으로 얼마든지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진솔성이 없습니다. 그냥 한 번 내뱉은 말에 불과합니다. 이를 두고 “믿음이 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믿음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의 열매,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인내의 열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성화의 열매, 거룩함과 의의 열매,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같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참 믿음인지, 거짓 믿음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구원의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믿음이 없다고 하신다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구원의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기자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핍박과 억압을 받으면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믿음을 붙잡고 견고하게 하고자 오늘 본문을 기록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믿음을 저버리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깨우치기 위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예로 듭니다.
본문 17,18절을 보십시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도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본문에서 2가지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그들의 범죄함이고, 두 번째는 불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결론적으로 “믿지 아니하므로”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아니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과, 믿음이 없는 불신앙은 범죄와 불순종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불순종합니다.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모습이 있다면... 그는 아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불신앙으로 인해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 비추어 여러분 자신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의 열매를 맺습니까? 죄의 열매를 맺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까? 불순종합니까?
죄를 짓고, 불순종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아 아닙니다. 그러나 의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이자 강해설교자로 잘 알려진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았으며, 따라서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지만...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빌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의 열매를 믿고, 계속해서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선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구원의 열매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자가 누구였느냐? 고 묻고,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었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부터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끝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는 기대와 꿈을 안고 출발했을 겁니다. 애굽의 지겨운 종살이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낙원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들의 믿음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일시적·현세적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좋아했지만, 광야에서 갈증과 배고픔을 겪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자신들의 형편이 좋아지면... 아무 소리 안하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일컬어 일시적·현세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다닌다고 하여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일시적·현세적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구원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혹이 여기에 대하여 반박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들 중에는 가룟유다도 있었습니다. 유다에게는 믿음이 없었기에 그 약속이 그에게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참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혹시 일시적·현세적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하는 변덕스런 믿음은 아닙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완고한 자에 대하여 노하십니다.
17절을 보면 “범죄한 자들에게 노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자에게 노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죄나 완고함 때문에 분노하기보다 자신에게 손해가 있을 때 분노합니다. 죄에 대하여, 완고한 것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완고함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분노는 부당하지만, 하나님의 분노는 죄에 대한 분노이며, 완고한 자들에 대한 분노이므로 정당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노를 발하십니다.
‘제임스 패커’ 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악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악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사악한 자들을 벌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냉철하십니다.
출애굽 했던 1세대들 중에서 2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다 같이 죄를 지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데 하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킵니다마는...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성막을 지으시고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 동안 회개치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갈 기회를 상실하였습니다.
회개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할 마음이 들 때 회개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완고해져서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보다 구원의 은혜를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불신앙에서 벗어나 침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 고 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피차 권면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죄의 미휵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죄가 가진 하나의 특징이 기만성(欺瞞性)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속입니다. 죄는 인생을 더 행복하게 기쁘게 만들어 줄 것처럼 생각하도록 합니다. 죄는 즐거움을 줄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쉽게 미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불행과 파멸을 가져오고, 수치와 치욕을 안겨다 줍니다.
죄에 대하여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죄의 올무에 걸려듭니다.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설 때에 밤에 어떤 소리가 들이거나 낯선 움직임이 포착되면...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예의주시합니다. 이렇게 주의를 해야 적을 놓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주의를 하지 않고 “별 것 아닐거야!” 하는 생각으로 넘기면 적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죄악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공격합니다.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하여 강한 결속력을 가질 때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존 번역’이 쓴 ‘천로역정’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는 불리는 주인공이 ‘천성’을 향해 가는 중에 ‘소망’이라는 동료를 만납니다. 그들은 형제의 언약을 맺고 동료가 되기로 약속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인’과 ‘소망’은 함께 천성을 향해 갑니다.
일머 가지 않아 ‘감언이설’ 이라는 마을에서 ‘이기심’ 이라는 여행자와 마주칩니다. 이 때 함께 분별력을 발휘하여 ‘이기심’ 이라는 자를 피해갑니다.
그 후에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세상 집착’ 이라는 자가 이끄는 한 무리를 만납니다. 이 때 두 사람은 함께 그들을 꾸짖어 쫓아냅니다.
그 후에 ‘데마’가 나타나서 세상의 부로 가득한 장소를 약속하며 그들을 미혹합니다. 이 때 ‘소망’이 미혹을 받아 넘어가려는 순간... ‘그리스도인’이 ‘소망’에게 “보화는 당신을 미혹하는 덫”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어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에 ‘의심의 성’ 이라고 하는 지하 감옥에 던져집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합니다. 이 때 ‘소망’이 ‘약속’ 이라는 열쇠를 찾아 지하 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의심의 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음의 형제가 서로 의지하고 권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영적인 우정을 깊이 나눌 때 우리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죄와 맞서 싸울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무엇을 잡고 있으면 마지막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고 합니까?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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