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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2:14-18
백종선 2015-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293

성경 / 히브리서 2 : 14 ~ 18

제목 /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이유

 

지난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서 낮고 천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신 것은 정말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형제로 삼기 위해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거룩할 때 주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고, 사랑과 의와 선과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거룩한 영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죄씻음 받고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주님과 한 형제가 되셨습니까?

주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까?

거룩한 주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영광을 누리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주신 이 영광과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영광과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2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마귀의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풀어주어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기 이전에 인간의 실존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를 범함으로 타락한 인간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종노릇하던 마귀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가는 자신이 누구의 말을 듣고 따르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마귀의 말을 듣고 따르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후에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아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하시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와 다른 말을 합니다. 이 선악과 열매를 따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아담과 하와는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마귀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죽이는 자입니다. 14절 하반절을 보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마귀를 어떤 자라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죽음에 빠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고, 온갖 것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말을 따르게 합니다. 그래서 죽음에 빠뜨립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악한 마귀의 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살리는 영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의 영은 죽이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립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제합니다. 낙심한 자가 있으면 위로하여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반면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갑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방치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외면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릴 기회만 엿봅니다. 정죄하고 모함하며 큰 상처를 입힙니다.

 

마귀에게 넘어간 자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15절을 보면...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죽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입니다. 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비록 생계의 위협이 있다하더라도... 죽음의 위협이 있어도... 신앙과 의와 거룩함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힌 사람은... 신앙의 절개보다 생계를 먼저 생각합니다. 거룩과 의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목숨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한 평생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합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요?

죽음 너머의 영원한 소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영원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에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가치보다는 살아 있을 때의 부귀와 영화, 생명을 부지하는 데 더 급급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땅의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영원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며 사랑과 의와 거룩과 화평과 같은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를 멸하시고, 그 마귀에게 사로잡혀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풀어주고 자유하게 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를 위해서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혈과 육에 속하였기에 예수님도 똑같이 혈과 육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혈과 육의 모양으로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14절하)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마귀를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혈과 육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자신이 승리한 것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음에 굴복시켰다는 생각으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는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그 동안 벗어날 수 없었던 죽음의 올무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사슬을 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던 마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고전15:55~57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죽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마귀가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로잡아 둘 사슬이 없습니다.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마귀가 손톱과 이빨이 빠진 무기력해진 호랑이처럼 멸할 날을 두려워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시고 마귀의 사슬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행하신 또 하나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대제사장은 12보석이 박힌 에봇을 입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옷을 입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겁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대신하여 속죄 제사를 드려 백성들을 죄에서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제단 앞에 나아갈 때는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모든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그 어깨에 모든 죄의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안셀름이라는 신학자는 그의 저서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빚은 갚지 않는 한 그 빚은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빚은 너무나 커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다. 그 빚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빚을 감당하셨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의 값는 죽음과 심판인데... 이 죄의 값을 받는 순간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속량이 있었기 때문에 죄의 형벌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마귀가 인간을 잡아둘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준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습니까?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빚을 갚아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경험하셨기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냥 편하게 앉아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혈과 육의 몸을 입고 오시는 순간부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가난과 추위와 굶주림을 경험하였습니다. 힘든 노동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대제사장들로부터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고통도 경험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고난이었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런 고난까지 감수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고난당하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시며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크게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보자고 할 때 그 말이 힘이 됩니다.

또 하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심정을 헤아리며 진심으로 나를 격려하고 위로할 때 큰 힘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두 요소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 예수님은 내가 지금 당한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위로가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위로는 지나가듯이 한 마디 던지는 위로가 아니라 나를 정말 사랑하여 나의 고통을 헤아리시며 진심으로 주시는 위로이기 때문에 큰 힘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고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다 속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고난을 다 아시고 우리 곁에서 도우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힘입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죽음과 죄와 고난의 두려움을 이기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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