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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18 (딤후4:16-22)
백종선 2014-08-14 추천 0 댓글 0 조회 350
 

성경 / 디모데후서 4 : 16 ~ 22

제목 / 나의 힘이 되신 주

 

지난 시간에 바울의 주변에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데마와 같이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간 사람도 있고..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와 같이 끝까지 바울의 곁에서 동역자로 협력했던 사람이 있고, 알렉산더와 같이 바울에게 해를 끼치고 대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의 관계는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관계의 모델입니다. 신앙인들의 힘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이런 신앙의 동역자가 있다면 더 큰 힘이 됩니다. 이런 동역의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복음에 눈이 떠야 합니다. 복음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복음의 협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복음에 눈을 떠서 복음의 협력자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처음 변명할 때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변명한다는 말은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 변명할 때가 언제인지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1차 투옥되었을 때라는 주장과 2차 투옥되었을 때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두 의견 다 로마로 오기 전의 상황은 아니라는 데는 일치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에 있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차 투옥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바울이 내가 처음 변명할 때라고 했으니 당연히 1차 투옥 때라고 보는 것이지요.

2차 투옥 때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바울이 1차 투옥 때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 풀려났기 때문에 변명할 일이 없었다고 봅니다. 1차 투옥 때는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곁에 아무도 없을 수가 없었고, 2차 투옥 때 처음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때에 처음 자신을 변호했다고 보는 겁니다. 2차 투옥은 네로가 로마의 대화제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리고 그리스도인을 크게 핍박할 때였습니다. 이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화평을 당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박해가 있었습니다. 아마 이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단 로마를 떠나 피해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붙잡혀 투옥을 당하였지만 그의 곁에 함께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 변명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두 가지 의견 중에서 무게가 실리는 쪽은 두 번째 의견입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2차 투옥되었을 때로 보는 겁니다.

 

다 나를 버렸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바울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낄 만큼 심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참 큰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가장 힘들 때의 기억은 오래 남는 법입니다. 이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은 평생 잊지 않고 고마움을 품게 되지만, 자신을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떠나간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난날에 겪었던 서러움과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용서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한 잘못을 곱씹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먼저 다가가 화해를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한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그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마지막 순간에 스데반이 드린 기도가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였습니다.

 

스데반이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하신 기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상의 가상칠언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였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정신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원한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잘못한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르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터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갔던 독일의 틸만(Tilmann Geske)’선교사는 이슬람 청년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사건 직후 틸만 선교사의 부인인 수산나 선교사는 사건 직후 앙카라 TV 방송을 통해 나는 저들을 용서합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하며 공개적으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참으로 힘든 것이 용서입니다. 웬만한 그릇이 아니고서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용서의 힘은 대단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서로 앙숙이 되지만 용서하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평생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이 용서의 정신을 품을 수 있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넓히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친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그 힘든 시간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힘을 주신 분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다고 합니다. 바울이 혼자 힘들 때 힘을 주신 분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비록 바울은 혼자였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주께서 바울의 곁에서 힘을 주시고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개정한글 성경에서는 전도의 말씀 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케리그마라고 하는데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구원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바울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길을 가는 자와 함께 하시며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주시고 도와주십니다.

 

31:6절을 보면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보내면서 모압 광야에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너와 함께 가시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함께 하시며 도우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은 사명을 길을 가는 자에게 함께 하시며 힘주시고, 능력 주셔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담대한 마음입니다. 나를 도와주는 이 없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사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뻔뻔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네로 황제의 경우 자신들의 병사를 시켜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핍박을 가하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이 복음을 훼방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훼방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보면 정말 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악한 자들의 훼방과 공격을 받을 때 이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는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함입니다. 거룩한 배짱이 필요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이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여 맡은 사명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앞의 17절에서 주에게 힘을 주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셨다고 고백한 바울이 18절에서는 앞으로도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바울의 고백이기 이전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시고, 믿는 자들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주님의 계획을 모릅니다. 말을 해도 믿지 않습니다. 오늘 살아가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지막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날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때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죄악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사자의 굴속에 던져진다고 하더라도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승리를 바라보며 의의 길로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주께서 나를 악에서 건져주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는 이 믿음 가지고 의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천국에 들어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9~21절은 바울이 문안인사를 전하며 디모데후서 서신을 끝맺음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이들에게 바울이 문안하라고 전한 것을 보면 이들은 바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브리스가아굴라는 부부입니다. 이들은 바울의 선교에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16:4절을 보면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다고하였습니다. 바울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바울을 섬기며 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제공하였는데, 이곳이 에베소교회입니다.

 

오네시보로는 딤후1:16~18절에서 나옵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 있을 때 바울을 부지런지 찾아와 바울을 격려하였고, 에베소 교회에서도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20절에 나오는 에라스도는 고린도시의 재무관으로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하였는데 이 때 바울과 함께 갔던 인물입니다. (16:23)

 

20절에 나오는 드로비모 는 아시아 터키 사람으로 에베소 출신이었는데 그가 병이 들어 밀레도에 두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디모데에게 드로비모를 챙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너에게 문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로 바울과 함께 디모데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들로 사료됩니다.

 

21절에서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디모데를 재촉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디모데를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바울과 같은 입장이라면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워할 인물이 누구입니까? 그들에게 더 큰 사랑과 애정을 붓고, 더 많은 정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나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절에서 바울은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마지막 인사말인 동시에 축복문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심령에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자가장 큰 축복의 삶을 누리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로서 디모데후서 강해가 끝나고 다음 주부터는 디도서강해가 이어집니다.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바울은 복음에 전념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사명을 위해 생애를 불태웠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복음을 위해 사람들을 가르쳐 제자로 삼는 등... 오직 복음을 위해 일생을 달려왔습니다.

이 복음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이 복음에 새생명의 비밀이 있고, 이 복음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지혜가 있기에 바울은 복음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복음의 사명은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진 귀한 사명입니다.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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