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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강해 1 (딛1;1-4)
백종선 2014-08-20 추천 0 댓글 0 조회 297
 

성경 / 디도서 1 : 1 ~ 4

제목 / 바울의 사도된 목적

 

오늘부터 디도서 강해를 시작합니다.

디도서는 바울의 서신입니다. 디도서는 바울의 목회서신중 하나입니다.

디도서는 언제 어디에 기록하였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1차 투옥되었다가 석방되고, 그 후 선교를 하다가 재차 투옥을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하고 나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기 전인 대략 주후 64~65년경으로 추정합니다.

 

디도서의 수신자인 디도에 대해서 살펴보면...

고후8:23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디도를 나의 동료, 나의 동역자, 여러 교회의 사자,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디도는 바울로부터 인정받은 신실한 인물이었습니다.

 

15장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루어진 주요 논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 이었습니다.

이런 논쟁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바울이 안디옥에서 사역을 할 때 유대인으로부터 온 어떤 사람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사롭게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직접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갈 때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간 것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그 예로 데려간 사람이 바로 디도였습니다. 디도는 헬라인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의 사역에 헌신을 다하는 충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구원이 할례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확증하였는데 이 때 디도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의 3차전도 여행 때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이 때 바울은 디도를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로 파송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영적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4개로 나뉘어져 있었고,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들, 무질서한 은사주의... 이런 문제들로 교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디도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겨 고린도교회에 파송하였는데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한 디도를 두고 바울은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기쁨을 얻었고, 안심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주후 65년경에 바울은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으로 전도여행을 가서 디도에게 그레데에 있는 교회를 위해 사역을 하라고 맡겼습니다. 그레데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는 곳입니다. 이 섬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야만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정말 가난하였고, 힘이 없고 나약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디도는 바로 이곳에서 마지막 목회를 했는데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디도는 그레데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목회를 하다가 94세의 고령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1, 2절 상반절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바울이 사도가 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은 디도서 한 곳 밖에 없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또는 주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표현은 주로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표현을 자신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자신을 선지자들의 계승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그레데 섬에는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밝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제자와 사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제자(disciple)는 헬라어로 마데테스라고 하는데 배우는 자, 따르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란 일반적으로 어떤 학파와 종파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사람입니다.

신약 시대에 세례 요한을 따라다녔던 사람들을 제자라고 불렀고, 랍비들에게 율법을 배우던 사람들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하는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수행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12명을 택하여 제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특별한 복음의 사명을 맡겨 보내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움을 받은 제자는 아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방인의 사도로 보냄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한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사도가 된 목적이 무엇인지 3가지로 밝힙니다.

1.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2. 경건하게 살아가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3. 영생의 소망을 갖기 위하여

 

첫 번째 목적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의 믿음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10: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기회가 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이 세상과 인간의 죄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과 인간들이 악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은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하며 넘깁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기회가 주어지면 선악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위해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말해 주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악이 이 세상의 온갖 저주와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하며, 그 결과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어찌할꼬라는 말이 나오도록 죄악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 세상이 죄와 인간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도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새 생명으로 거듭나 의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바울과 같이 구원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여 구원의 믿음을 일깨우는 귀한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기 바랍니다.

 

 

두 번째, 바울이 사도가 된 목적은 경건하게 사는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모습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경건한 삶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진리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이익이나 신념을 따릅니다. 옳고 그름을 파단하기도 하지만 그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진리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세상은 거짓과 위선, 음모와 같은 범죄가 성행하여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이런 세상을 진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병들어가고, 썩어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을 몰아내고 진리 가운데 서게 해야 합니다.

 

이 역할을 감당하려면 우리가 먼저 경건의 삶으로 진리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건의 삶으로 진리 가운데 거하는 방법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경건의 능력으로 진리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경건의 삶이 가능할까요?

딤전4:7,8절에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경건의 삶을 위해서는 연단해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이런 연단과 훈련이 없이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무능하고 무익한 신앙인이 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경건한 생활을 위해 7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라고 제안하였습니다.

1. 너는 항상 기도하고 있는가?

2. 너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는가?

3. 너는 모든 경우에 항상 감사하고 있는가?

4. 너는 욕심을 내는 것이 없는가?

5. 너는 두려워하는 어떤 일이 없는가?

6. 너는 네 중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

7.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경건의 훈련을 등한히 하면 안 됩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후로 경건의 훈련에 힘을 쏟아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시고 경건의 삶으로 진리 가운데 거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세 번째, 바울이 사도가 된 목적은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품고 꿈꾸는 소망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며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일의 출발점은 소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소망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소망하지 않고서는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꿈꾸지 않고서는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소망이 영생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6: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영생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을 열어놓으시고, 그 방법까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열어놓으신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것은 몽상이 아닙니다.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약속이시며, 반드시 이루어질 현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세 가지로 말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2. 경건하게 살아가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3. 영생의 소망을 갖기 위하여

이것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힘써야 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3절을 보십시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자기 때는 그리스도의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때에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명을 전도의 방법으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하신 전도를 내게 맡기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전도의 방법으로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명 수행의 방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의 믿음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들에게 경건하게 살아가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영생의 소망을 갖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에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바울이 하였던 것처럼, 복음의 사역자들이 해왔던 것처럼 우리도 전도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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