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디모데후서 4 : 9 ~ 15
제목 / 복음의 협력자가 되라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시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내다가 헤어지고 연락이 두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편지나 전화로 가끔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평생을 같이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맺은 관계는 끝까지 좋은 관계로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마는 적어도 관계가 뒤틀려서 서로 반감을 가지고 헤어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금까지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동향을 이야기합니다. 이들 중에는 바울과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바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난 사람도 있고, 떨어져 있으면서 소식만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10절 상반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 속에 바울의 아쉬운 마음이 깊이 묻어 있습니다. 바울을 떠난 사람이 데마뿐 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앙인들에게 많은 핍박과 억압이 있었기에 신앙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딤후1:15절을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비롯하여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고 신앙의 길에서 떠났습니다. 이렇게 바울을 떠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데마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떠난 것이 바울에게는 큰 아픔이었고,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연락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사람과의 헤어짐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 있고,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 데마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데마는 골4:14절, 몬1:24절에서 바울이 함께 안부 인사를 전하던 동역자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 투옥되었을 때만 해도 바울의 곁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함께 동역했던 데마가 자기를 떠나 세상을 행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데마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바울을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결국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일2:15,16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우리가 가장 크게 받는 유혹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큽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떨치지 못하면 데마와 같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신앙인이 추구하는 것이 서로 배치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면 신앙인의 자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의미하게 들립니다. 그러다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져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의 것도 사랑할 수는 없습니까? 하는 질문을 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둘을 사랑하면 항상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니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자니 마음이 불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을 겪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런 갈등을 겪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신앙을 결단입니다.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갈라진 두 마음에서 벗어나 한 마음을 품으면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더 깊은 차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서 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그레스게는 갈리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과 같이 있다가 자신의 사역지로 간 것을 말합니다.
‘그레스게’는 이 본문에서만 유일하게 나오는 인물이고, ‘디도’는 디도서에 나오는 그 ‘디도’입니다. 딛1:4절을 보면 바울은 디도를 가리켜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복음의 동역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바울의 곁에 머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복음사역을 위해 각자의 사역지도 간 것 같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이 한 절의 본문에서 바울과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네가 올 때에”라는 말은 디모데가 로마에 올 계획이 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마가도 디모데와 함께 로마로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이미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마지막까지 함께 한 바울의 동역자는 ‘누가와 디모데와 마가’입니다.
누가와 디모데와 마가는 바울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마지막까지 함께 한 믿음의 가족입니다. 이들의 관계를 보면 참으로 보기 좋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디모데와 바울’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영적인 아들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디모데는 믿는 자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제자가 되었고, 바울의 요청을 받아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가 된 디모데는 바울의 신뢰를 받아 중요한 일을 도맡았으며, 신실하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연소하여 목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바울이 아버지처럼 그를 격려하고 위로함으로 계속해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디모데 역시 바울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바울이 필요할 때마다 바울을 도와주는 바울의 큰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곁에 있으면서 바울의 건강을 돌봐주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해 많은 불편함을 안고 있었는데 누가는 이를 알고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몸을 관리해주고, 바울과 함께 복음의 사역에 힘을 쏟으며 협력하여 선한 뜻을 이루어갔습니다.
‘마가’는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을 가장 먼저 기록한 저자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별 고생 없이 자라난 유약한 청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연약하여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바울이 ‘나의 일에 유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며 함께 하기를 원할 만큼 충실한 일꾼이 되었고 바울이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의 관계는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관계의 모델입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고, 힘이 빠지고, 갈등을 겪다가 뒤로 물러섭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려하기보다 누가보다도 내가 더 많이 축복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좋은 신앙을 가지려면 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유익을 주려고 해야 합니다. 서로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때 바울과 디모데와 마가와 누가와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런 관계는 결국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옵니다.
신앙인들의 힘의 근원은 하나님이지만 이런 신앙의 동역자가 있다면 더 큰 힘이 됩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이런 동역자들이 많아질 수 있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만 오면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나고, 좋아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입장을 먼저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서로의 관계가 협력하는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에 이러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4,15절을 보십시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언급합니다.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 구리 세공업자입니다.
· 바울에게 해를 많이 입힌 자입니다.
· 복음 사역자들의 말을 심히 대적하였던 사람입니다.
알렉산더는 바울을 힘들게 했던 인물입니다. 얼마나 바울의 마음에 사무쳤으면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갚으시리라”고 하며 “너도 그를 주의하라”고 했을까요?
알렉산더라는 인물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바울이 그에게 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바울이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받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에 전념하는... 존중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할 사람에게 대적하고 해를 입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라져야 하는 모습이 방해하고, 대적하고, 비난하는 일입니다. 적은 힘이라도 협력하려고 해야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늘어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방해하고, 대적하고 비난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이해하고 품어주며 부족한 가운데 서로 힘을 모아 선한 뜻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주변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데마와 같이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간 사람도 있고..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와 같이 끝까지 바울의 곁에서 동역자로 협력했던 사람이 있고,
알렉산더와 같이 바울에게 해를 끼치고 대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그렇습니다.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와 같이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와 같이 협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협력자의 인생을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협력자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럴 때 협력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디모데와 누가와 마가와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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