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모데후서 강해 16 (딤후4:6~8)
백종선 2014-07-31 추천 0 댓글 0 조회 267
 

성경 / 디모데후서 4 : 6 ~ 8

제목 / 바울의 인생 회고

 

본문은 바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6절을 보면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운명이 거의 끝에 다다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가 다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순간이 되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생애를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순간 자신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리라 생각하십니까?

 

로빈 샤르마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음을 터트렸지만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죽을 때 사람들은 울음을 터트리겠지만, 자신은 웃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 임종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후회함이 없는 멋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을 보면 그가 이와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절을 보면 바울은 다음 같은 말을 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

전제는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사르기 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부어졌다는 말은 자신이 전제와 같이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삶을 살았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자신도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애 전부를 복음을 위해, 구원의 역사를 위해 드렸습니다.

 

정말 값진 인생은 드려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욕망을 추구하며 자신의 배를 불려 만족을 얻으려고 살아가는 인생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역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헌신의 삶을 산 사람은 고귀한 영적인 유산을 남겨놓았기에 죽음과 상관없이 그 영향력은 지속되며, 또한 이들은 심어놓은 소중한 씨앗들이 있기에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헛된 영광을 위해 허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전제와 같이 드려지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7절을 보면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합니다.

싸움은 헬라어로 아곤αγων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경기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상입니다.

치열한 생존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각축장입니다. 내가 물지 않으면 물린다는 생각으로 서로 물고 늘어지며, 남을 밟지 않으면 밟힌다는 생각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 치열하게 싸웁니다. 이런 싸움은 생존을 위해 피치 못할 싸움이라고 하실지 몰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공존(共存)이며, 공생공락(共生共樂)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차지하고, 높아지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전의(戰意)를 불태운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 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에베소서 6장을 보면 12,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바울은 이 세상의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여 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이들을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11: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침노하여 빼앗는 자가 차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침노하고 싸워야 천국을 차지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행하며 모든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장악하고 있는 땅을 정복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받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가나안 7족속과 7년에 걸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침노한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천국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천국을 가로막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 악한 영의 세력들과 싸워야 합니다. 출애굽 1세대들처럼 두려움에 사로 잡혀 이를 수행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면 천국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을 치르는 것이 힘들다고, 위험하다고 방관하며 손을 놓고 있으면 어둠의 세력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유린하여 많은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설 곳이 없어지고, 악한 세력들에게 코가 꿰어 끌려 다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이를 경험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 때 기독교인들이 천황을 숭배하도록 강요를 받아 대부분의 성도들이 천황 앞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공산당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그들은 교회를 불사르고 교인들을 처형하였습니다. 어둠의 권세들에게 침노를 당하면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교회는 힘을 잃어 악한 자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휘둘리는 일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천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영적 전쟁은 칼과 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6:11~18절을 보십시오. (신약316)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을 상대하여 그들을 능히 대적하고 이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입니다.”

 

무엇으로 무장하라고 하였습니까?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고, 성경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모든 기도와 간구...입니다.

진리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의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주시는 평안을 지키기 위해 사워야 합니다. 믿음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와 간구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물러서 있으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빼앗깁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지킬 수 있고, 침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까? 혹시 아무 생각 없이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 시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침노하여 하나님 나라를 쟁취하라

 

이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선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바울과 같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7절 하반절을 보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달려갈 길을 끝까지 잘 달려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13,14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시작만 하고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로 마지막까지 사명의 길을 달려 왔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난 주일 믿음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의 소망이 현재 우리의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이 현실적으로 성취되도록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도상에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목표를 향하여 전진(前進)하는 삶입니다. 바라는 천국의 소망이 실상이 되고, 증거가 되도록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의 일생을 걸고 도전하며 헌신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지 못하면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이 아니라 지나간 것에 연연하며 헛된 것을 자랑하기 쉽습니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나는 신앙생활을 몇 년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였고, 지금 당대에도 이런 직분을 가지고 있다.”이런 신앙의 연륜을 자랑하며 자신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과거와 경력만을 이야기하는 순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난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도상에 올라서야 합니다. 이전에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상입니다. 믿음은 증거입니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독일의 작가 괴테는 생각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데, 이 세상에서 가장 여러운 것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행동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믿음의 행동이 나타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실 때 아느냐?’가 아니라행하느냐를 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바울과 같이 믿음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바울과 같이 나는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뒤로 빠져 있거나 정지한 상태라면 다시 도상으로 올라서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십시오. 머리로 아는 신앙을 가지고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그래서 바울과 같이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길을 달려온 바울이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영광스런 의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예비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예비 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믿음을 지키며 믿음의 길을 달려온 사람에게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해서 국회에 진입하더라도 이제 남은 임기는 2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회의원으로 누릴 영광은 짧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얻는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영광이 우리 앞에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에 다다를 때까지 최선을 다해 앞만 보며 힘차게 달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록 짧지만 정말 귀한 시간입니다. 이 기회를 바울과 같이 전제로 드리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힘차게 달리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디모데후서 강해 17 (딤후4:9-15) 백종선 2014.08.07 0 417
다음글 디모데후서 강해 15 (딤후4:1-5) 백종선 2014.07.24 0 290

630823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앵지밭골1길 59-25 (회원2동 740-1) TEL : 055-247-7328 지도보기

Copyright © 희망촌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
  • Total67,277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