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디모데후서 4 : 1 ~ 5
제목 / 말씀을 전파하라
본문은 바울이 사명자로 부름 받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복음의 사명을 일깨우며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명하는 내용입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글의 분위기가 느껴지십니까?
이 말씀은 바울이 사사롭게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6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바울이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엄중히 명령한 것입니다.
그 명령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에 나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을 전파하라” 이것이 바울이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한 엄중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고,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으며, 장차 이루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손에 지음 받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 승천, 재림과 심판을 알고, 장차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 동안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동행 하시면서 복음 전파자로 준비시키시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행20:24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 전파의 사명에 몰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사명을 부여합니다.
말씀 전파의 사명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에게만 부여된 사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사명입니다. 말씀 전파의 사명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땅에 관영한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인생들을 그 고통으로부터 건지는 일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이 세상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전파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지를 깨달아 바울과 같이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명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부패하고 썩어 몰락하고 있는데 나 자신만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나 자신의 안위보다 더 앞서야 하는 일은 죄악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그 안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며 춤을 추고 즐기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 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내 자신이 구원을 받아 의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는 의로워질 수 있는 그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의로우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의로운 삶이 가능합니다.
그 다음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부패한 것을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고,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 숨이 절로 나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국민을 섬기라고 세운 권력자들이 국민을 우롱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언론들이 거짓을 일삼습니다. 성실하게 일한 국민들의 피와 땀방울로 세워진 기업들이 흡혈귀와 같이 국민들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교육의 현장은 사람됨을 가르치는 교육을 포기하고 기능인 양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이 사회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이 되어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립니다.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부으며 이런 사회를 비판합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을 쏟아 붓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분노하고 비난하고 욕한다고 하여서 이 사회가 변할까요? 정권이 바뀌면 변할까요? 이런 방법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해야 사회가 변합니다.
각 사람이 구속의 은총을 입어 죄를 씻고 의로워질 때 가능합니다.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때 가능합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때 가능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이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사명인가를 자각하여 이전에 하던 모든 일은 내려놓고, 말씀 전파의 사명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자신의 일생을 여기에 바쳤습니다.
우리도 말씀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일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2절 하반절부터는 어떻게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바울이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짧은 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나이가 들면 인생이 짧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늘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큰 인명 피해가 난 이유가 때를 놓친 것입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대피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구원의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만날 기회가 얼마나 될까요? 만남의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기회를 뒤로 미루면 그 기회는 사라집니다. 만남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더 따뜻한 말로, 환한 미소로, 진실함으로 다가서서 그들의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확신 있게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증거 하지 못하여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므로 언제든지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기회를 복음 전파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말씀을 잘 증거 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말씀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2절을 보면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습니다.
‘경책하라’는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훈계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왜 죄인인지, 자기 욕망대로 사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을 떠나 살면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를 가르쳐 깨우쳐 주라는 말입니다.
죄의 심각성을 모르면 죄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인의 인생은 허망합니다. 살아도 기쁨이 없고 보람도 없습니다. 그 마음에는 항상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가득 차 있고, 불안과 두려움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우리 인간이 왜 죄인인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왜 허망하고, 불안하고,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는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경계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티마오’라고 하는데 존경한다는 뜻의 ‘티마오’를 부정하는 접두어‘에피’가 붙어 에피티마오가 되었는데 ‘존경받지 못할 일은 금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덕스럽지 못한 일, 본이 되지 않는 일은 삼가도록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경책하고 경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절도를 범한 사람들에게 가서 너는 죄인이라고 해 보십시오. 봉변당하기 십상입니다. 사람들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를 짓고도 남에게 핑계를 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경책하는 일이 힘든 것입니다.
옆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던 사람을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힘든 것이 인격의 변화이고, 삶의 변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권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말씀 전파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께 돌아서게 만들 수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의 사욕을 채워주는 스승만을 많이 두고, 진리가 아닌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어떤 방송이 있는지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채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방송을 돌아가면서 다 보지 않습니다. 보는 것만 봅니다. 자기의 관심사와 맞는 프로에 채널을 고정하고 시청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습니다. 자신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말세의 때가 되면 사람들이 더욱 악해지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는 도덕과 윤리, 철학과 같은 인문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륜, 이혼, 법정 싸움과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요즘 방송을 보면 드라마나 사건을 다루는 프로에서 이런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기에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이 어떤 선생을 찾습니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돈 벌이가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을 찾습니다.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출세에 도움이 되는 강사를 찾습니다.
갈수록 귀를 가리고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의 말보다 사욕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며,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어질 것입니다.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의 교육은 어릴수록 좋습니다. 어린이들의 마음 토양은 아직 순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그들의 마음에 심어놓는다면, 그들의 일생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어려운 때가 오겠지만 그럴수록 모든 일에 더욱 신중하며 고난을 각오하고, 전도자로서 네 직무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이 세상의 멸망을 방치하는 것이며,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이 세상을 살리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전도인의 직무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하십시다.
한 번 같이 외쳐봅시다.
“나는 말씀 선포의 사명을 맡은 사명자입니다.”
이 의식을 결코 잊지 말고, 좋은 전도자로서 말씀 선포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