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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14 (딤후3:13-17)
백종선 2014-07-10 추천 0 댓글 0 조회 198
 


 

성경 / 디모데후서 3 : 13 ~ 17

제목 / 성경의 유익

 

디모데가 목회하는 교회에 어리석은 여인을 미혹하여 욕심에 사로잡히게 하고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얀네와 얌브레와 같이 진리를 대적하고,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을 버린 자들이었습니다.(8)

바울은 이러한 자들의 어리석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뒤에 본받아야 할 경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였습니다. 6가지입니다.

1)교훈 2)행실 3)의향(목적) 4)믿음 5) 오래참음(인내) 6)사랑

 

바울은 이어서 경건한 삶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악인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중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곧 속이는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속이는 것입니다.

14절로 넘어가면 그러나라고 시작합니다. 역접 접속어는 앞의 내용을 부정할 때 사용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속이면서 살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 속일까요? 어떤 경우에 사람을 속이나요?

여러 경우가 있겠지요.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자신의 출신과 경력, 학력을 속이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나 어떤 비밀,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속이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팝니다. 의류매장에 보면 원가판매라고 써 붙여 놓습니다. 시장에 가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며 파는 분들이 있습니다. 잇속을 챙기기 위해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소유를 우선시하면 진리나 도덕적 가치는 힘을 잃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더라고 돈을 벌수만 있다면 이것을 선택합니다. 불효자식이란 소리를 들어도 돈을 선택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돈을 선택합니다. 소유를 우선시 하는 순간 모든 중요한 가치들이 돈 앞에서 무력해 집니다.

 

에릭 프롬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인간의 소유 욕구가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치가 뒤바뀌면 그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큰 혼란에 빠집니다.

 

인간의 가치가 높습니까? 돈의 가치가 높습니까?

당연히 인간의 가치가 높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높아지면 인간은 도구화됩니다. 인간이 돈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돈에 굴복하고, 돈을 구걸하는 인간이 됩니다. 인간의 인격은 짓밟히고 돈에 휘둘리는 존재가 됩니다.

 

가치가 뒤바뀌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스스로 불행에 빠뜨리게 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탐욕을 부리며 추하게 사는 부자보다 맑은 영혼을 가지고 인간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유욕에 사로잡혀 악을 행하고 속고 속이며 사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바른 길로 행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4절 이하를 보면 경건한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4~1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이 주는 유익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 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첫째, 성경을 보면 구원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종살이하고 있을 때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구원의 드라마가 기록되어 있고, 이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단지 장소만 이동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에게 율법을 주었고, 바벨론에서 귀환을 할 때에도 에스라를 통하여 율법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르쳐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고 역사적 교훈을 얻게 하셨습니다.

 

신약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에 빠져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에서 건져주시고,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을 기록하도록 하여 구원의 진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읽으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행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어도 여기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벨론에 포로로 있는 유다 백성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애굽의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 구원의 팔을 펼치셨습니다.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지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구원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삶은 구원받은 자만 가능합니다. 구속의 은총을 입지 않고서는 경건한 삶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인은 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부패한 인간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속사람이 부패하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 역시 썩은 냄새를 풍깁니다. 죄인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죄를 씻고 마음이 정결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경건의 삶이 가능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16,17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므로 이 말씀을 배우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나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 내 자신의 치부가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내 자신이 다 까발림을 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덮고 더 이상 말씀을 펼치지 않고, 귀를 닫는 방법과, 나의 부끄러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나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덮고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를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의 질병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영적인 병입니다. 수치가 드러나고 허물이 드러나는 것은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 때 자신을 바로잡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경건의 능력이 생겨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우리 희망촌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여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사람들마다 반응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떤 분은 배우려는 열망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그 말씀 가운데 거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분들을 보면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변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능력을 갖추어 선한 일에 참여합니다. 이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제 마음까지 흐뭇해집니다.

 

어떤 분은 그냥 들어주는 척만 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 부족합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답답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7월의 신앙주제가 무엇입니까?

성장하게 하소서! 입니다.

영적인 성장, 신앙의 성장을 이루려면....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의 확신 위에 서겠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확신한 대로 거하겠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듣기만 하고 그것으로 그치는 분들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진리의 확신 위에 서기까지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배움에 힘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리의 확신 위에 섰을 때는 그 진리 가운데 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진리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경건의 능력을 갖춘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분은 말씀을 멀리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분들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아는 것과 믿고 확신하는 것은 다릅니다.

말씀을 어설프게 알고 있거나,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는 섣불리 말씀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진리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진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평생 배워야 합니다. 배울수록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합니다. 말씀의 진가는 배움의 시간이 쌓일수록 더 진하게 우러나옵니다.

 

지금은 성서 통독을 위한 성서 해설을 통해 본문의 개론과 내용의 흐름을 나누고 있지만 이 과정이 지나면 좀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 말씀의 샘물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고 깨닫고자 하는 여러분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펼쳐놓고 가까이하면서 말씀과 함께 성장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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