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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13 (딤후3:10-12)
백종선 2014-07-03 추천 0 댓글 0 조회 208
 

성경 / 디모데후서 3 : 10 ~ 12

제목 / 바울의 경건

 

지난 시간 어리석은 여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어리석은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넘어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분별력이 없어 자신을 유인하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 잘못된 길로 빠졌습니다. 그 후로 갈수록 죄가 쌓여 그 죄가 중하여 졌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 욕심에 이끌려 살았고,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말을 가려서 듣지 않고 미혹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여인을 유인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8,9)

진리를 대적하고,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 이야기나 가리지 않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대적하고,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에 관하여 버림받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어리석은 여인처럼 진리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될 대상이 누구인지를 언급한 뒤에, 따르고 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 내용이 10~17절 말씀까지 이어지는데 오늘은 10~12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0~12절에서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하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앞의 5절에서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신앙, 무기력하고 무능한 신앙인이 됩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과 성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경건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경건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삶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6가지를 언급합니다.

교훈, 행실, 의향, 믿음, 오래 참음(인내), 사랑입니다.

 

첫 번째 경건의 모습은 교훈을 주는 일입니다.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 진리의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교훈하였습니다.

 

정태기 목사님이 쓴 내면세계의 치유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섬마을의 주민들이 말이 너무 거칠어서 말할 때 대화할 때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기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될텐데 꼭 욕을 넣어서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대답하는 사람도 욕을 넣어 대답합니다.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를 못할 정도로 욕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독립운동을 하던 분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분이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냥 천덕구러기 처럼 자라나는 것이 마음아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비를 털어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분이 학생들에게 욕하는 잘못된 언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욕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은 잘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특별한 방법을 시도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욕표라는 것을 10장씩 나누어주고 친구들이 욕하는 것을 들으면 그 친구로부터 욕표를 한 장 받아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 욕표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에게는 최고급 공책을 선물로 주고, 가장 작게 가진 사람에게는 엄하게 벌을 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게 일주일간 아이들은 표를 모으기 위해 자신은 욕하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친구들의 말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친구들의 표를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선생님은 약속한 대로 가장 많은 욕표를 모은 학생에게는 최고급 노트를 선물로 주고, 욕표를 한 장도 가지지 못한 학생은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교무실로 불려간 학생은 선생님이 적당히 타이르고 보내주겠지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엄한 표정을 지으시며 종아리를 걷으라고 하고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게 매를 대셨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보았을 때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매를 때리시며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는데...” 라는 말을 하시며 마음 아파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학생은 선생님의 진심을 느끼며 나도 선생님과 같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 매를 맞는 학생이 바로 정태기 목사님이었는데 정목사님은 이때를 회상하며 이 순간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순간이었으며, 그 분의 가르침이 나에게 생명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바른 교훈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바른 교훈은 사람의 일생을 바꿉니다. 흙속에 파묻혀 있던 인물을 깨어나게 합니다. 교훈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교훈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의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진리를 깨우치시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시며 받은 교훈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쳐 저들의 영혼을 일깨워야 합니다. 잘못된 행실에서 벗어나 의의 길로 행하며,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를 담임하는 빌 하이벨스목사님이 쓴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이 가르쳐주신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전염시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경건의 모습은 본이 되는 행실입니다.

본이 되는 행실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는 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웬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건강하려면 의사의 말을 듣고 의사의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환자를 만나 진료하고 치료합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건강의 비결을 잘 알고 있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작 의사들이 병에 걸려 곤혹을 치르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만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의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행실의 본을 보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앎이란 행동으로 나타날 때 완전한 것이 됩니다.

 

배움의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무의식적인 무능력 단계로서 의식도 없고 능력도 없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 의식적인 무능력 단계로서 의식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 상태입니다.

세 번째, 의식적인 능력 단계로서 의식할 때만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네 번째, 무의식적인 능력 단계로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예로 들면...

첫 번째 단계가 운전의 의식이 없고 운전의 능력도 없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 단계가 운전의 의식은 있지만 운전의 능력은 없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아직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식해야 실수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운전을 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아는 것을 행실로서 본을 보이기 위해서는 네 번째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훈련입니다.

 

경건의 본이 되는 행실이 나타나려면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훈련, 의의 훈련, 정직의 훈련, 기도의 훈련, 묵상의 훈련, 예배의 훈련, 말씀의 훈련... 등 이것이 생활화되고 체질화되도록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삶으로 본을 보이는 신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경건의 모습은 의향 입니다.

이 말은 목적’(purpose)을 의미합니다.

내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물질적인 욕망을 목적으로 삼으면 경건의 삶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목적으로 하면 경건의 삶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뚜렷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소명의식이 분명했고, 이 목적을 잃지 않고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기분에 따라 왔다 갔다 합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을 때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정한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과 사랑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목회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기도하며 목표를 정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마음에 새기고 기도하며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생을 통하여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네 번째 경건의 모습은 믿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가 되신다는 믿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죄악의 세상에서 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세상일 하듯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따지고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업체가 아닙니다.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면 기업처럼 경영하려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믿음으로 거룩한 뜻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경건의 모습은 오래 참음, 인내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건의 훈련을 쌓는 과정에서 참고 인내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 당하는 핍박을 인내하며 참아야 합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 영광의 날이 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영광의 날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려면 한 걸음 한 걸음 딛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 한 걸음들이 모여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집은 결코 저절로 지어지지 않습니다. 벽돌 하나하나씩 직접 올려야 집이 지어집니다. 모든 이치가 똑같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요행을 바라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태만한 것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경건한 삶에 이르려면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딤전4:7,8절에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려면 먼저 기도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의 귀가 열리려면 말씀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랑과 의를 행하는 자가 되려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이를 실행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인내하며 훈련을 쌓아갈 때 기도의 문이 열리고, 말씀의 귀가 열리고, 사랑과 의를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인내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 당하는 핍박입니다.

11절을 보면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선교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는 바울이 심한 박해를 받는 곳입니다. 바울은 선교를 하면서 유대인들의 방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경우에는 옥에 갇히고, 매를 맞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도와줄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이를 욕하고 비방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기운이 빠지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그냥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래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완전한 경건의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은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욕을 듣고, 수치를 당하고, 모진 고난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신실했던 스데반 역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하게 살고자 하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경건하게 살다가 박해를 받으면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5:11,12절에서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건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다가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제사 문제로 인해 가족들과 친지들로부터 받았던 핍박,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 때문에 겪은 어려움,

정직과 의를 행하려다가 직장에서 따돌림 당했던 일,

구제하고 도와주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험을 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실족하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핍박을 당하는 것은 내가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경건의 모습 5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교훈을 주는 삶 2) 본이 되는 행실 3) 분명한 의향

4) 믿음 5) 오래 참음과 인내

 

이 외에 여섯 번째로 사랑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알고 시간 관계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섯 가지를 잘 기억하고 실천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경건의 본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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