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11:14-2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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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누구에게 속하였는가?
성경 / 누가복음 11 : 14 ~ 28
세계인구가 80억이 넘었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소속이 다릅니다.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족보가 다릅니다.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차이가 납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냐? 어떤 가문에 속했느냐? 어떤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 이것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소속 중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선천적인 혈연관계와 인종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후천적인 것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국적, 학교, 직장, 종교는 선택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곳에 소속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선진국 시민이 되고자 이민을 가기도 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을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신경을 씁니다.
소속을 정함에 있어 무엇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느냐? 마귀에게 속하느냐? 입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지만 마귀에게 속한 자는 마귀와 함께 무저갱 속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는 가볍게 듣고 흘려버릴 말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깊이 연구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속하든지 마귀에게 속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는 축귀(逐鬼)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에 들린 사람을 보시고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귀신이 나가자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 입이 열려 말을 합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워합니다. 만약 여러분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이런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찬사를 보낼 겁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사람 중에 예수님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5,1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이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 본문에는 이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지만 병행구절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이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임을 밝힙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하며 예수님이 마치 바알세블 귀신에게 속한 사람인 것처럼 말합니다.
예수님은 논리적으로 그들의 말이 모순됨을 밝힙니다. 만약 내가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한다면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 셈이 되는데 귀신들이 이런 식으로 싸우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 물으십니다. 이는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적과 싸우지 않고 자기 편을 향하여 총을 쏘는 것과 같은데 이렇게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말은 이치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말에 반박하신 후에 귀신을 쫓아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2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일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음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이 지배하고 있던 곳을 하나님께서 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마귀의 나라가 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마귀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는 마귀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마귀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요? 23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고 말씀합니다.
중간 지대가 없음을 말씀합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 하십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립 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았다면 마귀에게 속한 겁니다.
23절 하반절에서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십니다. 여기서 ‘모은다’는 말은 추수를 의미합니다. 영혼을 추수하는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쏟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시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영혼을 추수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속하지 아니한 사람은 “헤치는 자라” 하십니다. 여기서 ‘헤친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는 뜻이 아니라 흩어 놓는다는 말입니다. 영혼을 추수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오히려 방해자의 역할을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방해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 예수님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오히려 전도하지 못하도록 막고, 박해하여 성도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들 마음에 예수님이 없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주장하며, 자기 의를 자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였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마2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하시며 이들의 악을 낱낱이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지만 진작 자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높임 받고, 문안받고, 랍비라 칭함 받길 좋아하지만 섬길 줄 모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합니다.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아무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내 자신을 믿을 뿐이다”고 한다면 그의 마음이 비어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던 귀신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귀신의 놀이터가 됩니다.
24~26절을 보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쫓겨난 이후에 자신이 거주하며 쉴 곳을 찾지만 찾질 못합니다. 그러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그 사람에게로 갑니다.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습니다”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셨지만 그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빈 곳으로 두었습니다. 그 결과 더 악한 귀신이 들어와 그의 형편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고후13: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으면 마귀의 놀이터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때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27,28절을 보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있던 한 여인이 음성을 높여 말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출산하고 양육한 ‘마리아’야 말로 복 있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영광은 자녀에게 있습니다. 어떤 자녀를 낳고 길렀느냐가 어머니의 영광입니다. 만유의 주가 되시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낳고 기른 어머니야 말로 영광스럽고 복있는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고 외친 이 여인의 소리를 들으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최고의 걸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와 영광스런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함으로 아름다움을 잃고, 영광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자기 민족으로 삼으시기로 작정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창대케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애굽 땅에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늘어나 큰 민족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훈련을 시킵니다. 신8: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광야 40년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각성시킬 때마다 율법을 낭독하게 하십니다. 가나안에 진입하기 전에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모세가 율법을 선포합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이후에 돌에 율법을 새겨 기록으로 남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세운 후 율법을 낭독합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영적 갱신을 할 때마다 율법을 낭독합니다. 여호수아의 세겜언약, 히스기야와 요시아 왕의 영적 갱신을 할 때 율법을 낭독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성하여 영적 회복을 위고자 했을 때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포로 귀환하였을 때도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며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재건합니다.
신약으로 들어오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신8장 말씀을 인용하시며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요일1:1절에서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합니다. 예수님을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이라 하며 그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졌다고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행할 수 없으나 말씀이신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요일3:8~10절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마음에 영접한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며 죄를 멀리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이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사람들의 말만 듣고 신앙생활하면 잘못된 신앙관을 가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냥 읽고 지나지 마시고 읽은 말씀을 정리하여 노트에 기록해 보십시오. 성경을 부분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균형있게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단순화시켜서 쉽게 결론을 내리려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평생에 걸쳐서 읽고 연구하고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아는 만큼 바른 신앙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속하든지 마귀에게 속하든지 하나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려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 거룩하고 영광스런 삶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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