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4:17-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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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예수님을 따르라
성경 / 마태복음 4 : 17 ~ 22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한 번입니다. 사람마다 수명은 다르지만 주어진 인생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써 내려가길 원하십니까?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시대적 상황이 특정한 인생관을 만들어냅니다.
전쟁이 수십 년간 이어지고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에 나가서 죽는 전시 상황에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 는 말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인생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남은 시간이 하루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감을 주는 말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죽을 테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입니다.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농경 시대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합니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딴생각하지 않고 농사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먹을 것이 없어 굶어서 죽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난에서 벗어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부자가 되는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육이오 이후 가난을 경험하면서 “잘살아 보세”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였고, 잘 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삶의 방식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각입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다원주의가 나왔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주장을 인정하는 겁니다.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을 독선으로 여기고,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가치관, 나의 인생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게 되었는지, 나는 왜 이를 중요시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인생관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경험이나 시대적 상황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자기 경험이나 시대적 배경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인생관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가치관과 인생관도 바뀝니다. 유동적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두면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게 됩니다. 시대와 환경에 의해 변하지 않는 인생관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분명한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를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되도록 부르셨는가? 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의 초점이 하나님 나라였으며,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신 일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2)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 시키고,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3)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예수님을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며,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통치자’, ‘백성’, ‘법’입니다. 하나님 나라 통치자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 법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을 따르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치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예수님을 따르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나를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긍극적 관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약속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영광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연결되며, 하나님의 비전에 참여하게 되고, 목적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돌로 떡을 만들라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3) 나에게 절하라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실 때 40일을 금식한 상태이기에 먹고 싶은 욕망이 강했을 겁니다. 마귀는 이를 놓치지 않고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시며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려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자를 명하여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위험한 행동을 하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미혹한 겁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는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습니다.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차지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섬기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시며.. 오직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험을 넘어서지 못하여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하루 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말씀으로 살고자 다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성도가 많지 않습니다. 예배는 참석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더 적습니다.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 목사가 쓴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책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열광하는 팬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변화가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중국 무술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악당들이 등장하여 횡포를 부리고 비극을 안겨다 줍니다. 악인들의 횡포를 막으려 하지만 힘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주인공은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림 고수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산야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떤 경지에 도달했을 때 하산합니다. 그리고 횡포를 부렸던 악당을 만나 하나씩 물리치고 그들을 전멸하여 그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주인공을 강하게 만든 것은 훈련의 과정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훈련을 받지 않으면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행동 심리학자들에 말을 들어보면 사람은 지·정·의를 통해서 행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知) 알고, 정(情) 느끼고, 의(意) 결단하는 과정을 거쳐 행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지적으로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의지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하여 내 삶으로, 내 모습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엡4: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실까? 를 생각하며 뭔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주권을 쥐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권을 쥐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겁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경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기보다 돈과 사회적 지위, 권세를 얻기 위해 마귀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와 타협합니다. 거짓을 일삼습니다. 악을 행합니다. 이것이 곧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취하기 위해 마귀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하셨고, 사랑을 가르치셨고, 사랑을 명하였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할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義)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고 자기에게로 향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의 의를 잘 지킨다고 자부하며 자랑했지만 그 의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고, 대접을 받으려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은 내면으로부터의 의(義)를 이루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능케 합니다. 사랑할 때 이기적인 본능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처럼 섬기며 베풀며 희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려면 예수님을 따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로 우뚝 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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