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1: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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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일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복 있는 사람이 되라
성경 / 시편 1 : 1 ~ 6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으로 시작하는데 시편 전체가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대와 민족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복을 추구합니다. 유교에서는 다섯 가지 복(오복)을 말합니다. 장수(壽), 부유(富), 건강과 평안(康寧), 덕(攸好德), 편안한 죽음(考終命)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은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운수나 사주팔자를 봅니다. 부모 복, 남편 복, 자식 복, 건강 복을 말하며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려 하거나 굿이나 부적을 통해 운명을 바꾸려고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누리는 것을 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건강을 유지하려 하고, 부를 쌓으려 하고,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을 갖추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행복의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기 어렵습니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갖추면 행복할 거라 믿지만 잘못된 행복의 조건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무려 72년 동안 814명을 대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814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72년간 연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오랜 연구를 통하여 발표한 행복의 조건 7가지가 있습니다.
1.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성숙한 방어기제)
2. 교육 년수, 평생교육. 늘 평생 배우는 자세
3. 안정적인 결혼생활
4. 금연 5. 술 절제
6. 규칙적인 운동 7. 적당한 체중 유지
결론을 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쉬운 것이라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이 조건을 많이 갖출수록 노후까지 행복하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중요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돈이나 명예, 사회적 지위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복된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불행을 가져다주는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건강을 잃고 고통을 겪은 사람은 건강이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가난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본 사람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으나 고통에서 벗아났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빨이 썩어서 통증을 느끼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이빨의 통증만 사라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행복을 느낄까요? 일시적으로는 통증이 사라진 것으로 인해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치통이 사라졌다고 해서 행복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가르쳐 줍니다.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으로 시작합니다. 본문이 가르쳐주는 행복의 조건은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 되면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말씀합니다. 1절은 소극적인 면을 말하고, 2절은 적극적인 면을 말씀합니다.
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1절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 죄에 빠지게 되고, 깊숙이 개입하고, 죄악을 자행하게 되는지 단계별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 단계가 악인들의 꾀를 따릅니다. 그 다음 단계가 죄인의 길에 섭니다. 그 다음 단계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습니다.
죄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데서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뱀의 미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미혹합니다. 달콤한 미끼를 던지고 여기에 걸려들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미혹에 넘어간 것처럼 악인의 꾀에 넘어가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악인들은 매우 교활합니다. 달콤한 말로 미혹합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쉽게 미혹에 걸려듭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겠다는 명분으로 세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게르만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기에 세계를 정복할 수 있고, 세계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하며 게르만 민족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독일인들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꾀를 부린 것이고, 실제로는 세계를 정복하여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흑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악인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구미가 당기고 달콤하게 생각되더라도 그것이 악이면 거부해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으려면 악인을 멀리해야 합니다. 죄는 모방에서 시작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욕을 배웁니다. 친구들이 하는 욕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고 따라 하면서 욕을 배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욕을 따라 하지만 욕을 하면 심성이 나빠집니다. 거칠어지고 공격성을 띠게 됩니다.
살전5: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접촉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악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듣다 보면 악한 생각이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인을 멀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가 죄인의 길에 섭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다가 그 다음 단계에서는 죄인들의 길에 섭니다. 따르는 것은 피동적입니다. 타에 의해 미혹을 받아 끌려가는 겁니다. 하지만 ‘서는 것’은 주관적인 자기 의지입니다. 죄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들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발동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잘못된 영웅 심리가 발동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죄인의 길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잘못된 길에 서 있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고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겁니다.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가다 보면 과감해집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양심이 마비됩니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만해집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안하무인이 되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악을 행합니다. 다른 사람을 미혹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이 계획한 악한 일을 실행에 옮깁니다. 악인의 괴수 노릇하며 모든 것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으려 합니다.
1절은 복 있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하는 소극적인 면을 말씀하고, 2절은 복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늘 마음에 품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복된 삶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고,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이 좋고 말씀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낍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말씀으로 사는 사람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말씀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말씀의 유익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말씀이 부담스럽습니다.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말씀을 멀리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이 복을 누리는 삶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증거하며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에게 유익을 줍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합니다.
3절을 보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고 합니다.
중동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땅이 사막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넓은 광야에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땅에 풀도 없어 황토색입니다. 그런데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많은 열매를 맺는 곳이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의 삶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4절을 보면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고 합니다.
겨는 바람에 쉽게 날아갑니다. 악인의 삶이 이와 같다고 합니다.
타작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 키질을 합니다. 키질을 하기 전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어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키질을 하면 알곡은 남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농부는 알곡을 거두어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웁니다. 이처럼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쭉정이와 같습니다. 악인들이 형통해 보이고 잘 나가는 듯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집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악인의 형통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화려하지만 악인의 형통은 오래가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초가 약한 집은 아무리 화려하게 지어도 쉽게 무너지듯이 악인들의 삶은 기초가 연약하여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5절을 보면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인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한다” 고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형통을 조금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들의 득세는 잠시 잠깐입니다. 다 지나갑니다. 악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6절을 보면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합니다. 시편 1편의 결론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양한 인생의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입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악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길의 끝은 멸망입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길이며, 복 있는 자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악인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인의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라 하십니다. 그 길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며 의인의 길을 가는 복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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