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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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그리스도를 닮아가라
성경 / 고린도전서 11 : 1
사람은 사람을 모방합니다. 자신의 생활 방식을 관찰하면 대부분이 누군가를 모방해서 자신의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모방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특별히 부모를 보고 모방하는 면이 많기에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를 닮아있습니다. 부모의 몸짓, 어투, 표정까지 신기할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어떤 대상을 의식적으로 모방하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연예인이나, 선배, 친구,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를 모방해서 닮고자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누군가를 모방하며 닮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닮느냐 입니다. 누구를 모델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면 허물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고 합니다. 이는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 되었어도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를 본보기로 하느냐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영유아기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발달과 성숙을 강조합니다. 발달과정에서 어린 시절에 누군가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거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안 좋은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후에 좋은 선생님이나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치유되고 성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학교도 선택의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정해진 관계에서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지울 수 없는 외상을 입기도 합니다. 이렇게 받은 상처와 외상을 회복할 수 없다면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고 불행하고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후에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좋은 사람(멘토)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좋은 본이 되는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본이 되는 멘토를 만나면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멘토를 가까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간혹 “내 주변에는 좋은 신앙의 멘토가 없어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멘토를 내 주변에서 찾으려고 하면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좋은 멘토가 주변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좋은 멘토를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편32:9절에서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고 합니다. 말이나 노새 같은 짐승은 재갈이나 굴레를 씌우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뭔가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짐승처럼 피동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고자 적극성을 띠고 찾아야 합니다. 주변에서 좋은 멘토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이지만 보통 주변에서 좋은 멘토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사귈 수 있는 사람만 멘토로 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인물이나 외국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멘토로 삼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인물들을 책이나 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위인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인전을 통하여 훌륭한 인물을 만나면 그 위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그를 모방하게 됩니다. 책이든 영상이든 좋은 인물을 만나 교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적과 그들이 남긴 말을 통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모방할 때 참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판단이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닮고 싶은 대상이 다릅니다. 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유명 가수나 유명 배우가 끌립니다. 스포츠 스타가 끌립니다. 그래서 이들을 닮고 싶어 합니다. 이들의 사진을 수집하고, 앨범을 사고, 그들이 입는 의상을 흉내 내고, 그들의 제스처를 따라 합니다.
청소년기에 이들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들이 과연 나의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보통 청소년기에 반짝 좋아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이들을 좋아할 수 있지만 멘토로 삼을 정도의 대상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범이 되는 좋은 인물을 만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그동안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넓혀집니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넘어서서 볼 수 없고, 알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원주민들 중에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말씀드렸습니다만 지리적 한계 뿐만 아니라 지식적 한계, 경험적 한계로 인해 그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넘어서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소개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반인은 우주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천문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주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자기 성장을 이루려면 자신의 인격을 넘어서는 훌륭한 인물들의 삶과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보통 7,8세가 되면 자아의식을 갖게 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을 드러냅니다. 만약 이런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지낸다면 세월이 지나도 여기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의식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가족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시야를 갖게 됩니다. 내가 많은 것을 차지하고, 내가 이기는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임을 깨닫게 되면서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좁을수록 집착이 심합니다. 넓은 것을 보지 못하고, 높은 것을 보지 못하니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놓지 못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뱀은 허물을 벗지 못하면 몸이 굳어서 죽게 된다고 합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은 자라는데 몸을 둘러싸고 있는 허물은 자라지 않기 때문에 허물을 벗지 못하면 거기에 갇혀 죽고 맙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옛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면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습니다. 자기발전과 성숙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멘토로 삼고, 본보기로 삼아 본받아야 할 분이 있습니다. 완전하신 예수님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멘토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본보기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삶을 사셨습니다. 진리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말씀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위인이 있고 성인이 있지만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따라야 할 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본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길 원하십니다. 죄인된 인간을 변화시켜 예수님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죄인을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성화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고, 마음이 굳어 있어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지각을 열어주시면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면 큰 감동과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고 감격하게 되면 예수님께 감사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성경은 이구동성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엡5:1,2절에서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요13:34절에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시며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셨습니다. 벧전2:21절에서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히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약점이 있습니다. 죄도 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을 소개한 후에 12장으로 들어와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함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강조하는 이유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본능을 따라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어야 할지 여기에 집착해서 살아갑니다. 어둠의 그늘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무의미한 삶을 반복하면서도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볼 때 진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볼 때 진정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볼 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을 때 우리가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을 때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의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을 때 어둠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멘토이며 본보기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자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합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숙한 점을 드러내고, 여러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었기에 자신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의 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될 때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좋은 신앙의 모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모방을 통하여 닮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를 모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본보기는 누구였습니까? 누구를 보고 따랐습니까?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은 온전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보고 모방하며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바울과 같이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갈 때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많은 성숙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본받는 자 되어서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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