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히브리서10:38-3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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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믿음의 삶을 시작하라!
성경 / 히브리서 10 : 38 ~ 39
믿음은 삶의 대전환을 가져옵니다. 믿음을 갖기 전과 믿음을 가진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믿음은 회개를 동반합니다. 회개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삶의 대전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롬1: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에서도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히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히11장에서 계속해서 반복하여 나오는 단어가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누구는 이렇게 하였다는 식으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4절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고 합니다.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합니다.
7절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8절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갔다고 합니다.
20절에서 믿음으로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합니다.
21절에서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였다고 합니다.
24절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31절에서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믿음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믿음 생활합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자기 확신’이고 ‘자기 신념’이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될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사업 성공을 믿고 기도합니다. 내가 바라는 소원이 성취될 줄로 믿고 기도합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확신입니다. 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을 신뢰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계획이 이루어질 줄 믿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이루어질 줄 믿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믿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습니까? 믿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은 어떤 사실에 대하여 맞다고 긍정하며 인정하는 ‘지적인 동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이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며 ‘사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셨으며,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도록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사명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복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거룩한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악인은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롬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이는 삶의 변화도 없습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삶의 변화가 어렵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옥토에 뿌린 씨앗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고, 딱딱한 길 가나 바위, 가시 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씨를 뿌려도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므로 묵은 마음의 밭, 굳어 있는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병든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마음이 병들면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나 생각, 행동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결국 겉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이 가진 큰 문제점은 대부분 자신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잘못해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고도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요? 엡4:18절을 보면 감각 없는 자(양심이 마비된 자)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며,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며,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면 양심이 마비된 자가 됩니다. 이런 상태로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병든 마음을 고치지 않고는 사명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병든 마음을 고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말씀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어 드러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더러워진 죄를 씻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허용했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더러운 것, 악한 것 가리지 않고 욕심으로 취하려 했던 것에서 손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면서 삶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영적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왜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자각해야 합니다. 영적 각성이 없으면 믿음의 삶을 결단하지 못합니다.
철이 들지 않고, 세상을 알지 못하면 삶의 절실함이 없습니다. 절실함이 없으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느긋합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 놓이면 자세가 달라집니다. 안 하면 안 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이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실함을 느낄 때 비로소 각성하게 되고 각성할 때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영어를 하기는 하되 생활 영어 정도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한인 타운으로 이민간 사람들은 영어실력이 빨리 늘지 않습니다. 한인 타운에는 한국인들이 슈퍼를 운영하고 세탁소, 식당, 미용실, 옷가게를 운영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을 가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만을 사용해도 다 통합니다. 한국말을 해도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겁니다. 한국인들이 별로 없는 지역으로 이민간 사람들은 영어 실력이 빨리 늡니다. 그곳에는 한국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모르면 큰 불편을 느낍니다.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영어가 절박해집니다. 영어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 실력이 빨리 늡니다. 절박할 때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정신을 차리고 하게 됩니다.
미국이나 남미 같은 나라는 총기 소지가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총기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리고 남미 같은 경우는 총을 든 강도를 가끔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가 지면 바깥 출입을 하지 않습니다. 낮이라도 인적이 드문 곳에 가는 것을 삼갑니다. 이런 나라에서 생활하다보면 치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치안은 아주 잘 되어 있어 외출을 자유롭게 합니다. 외국인들이 이를 매우 부러워합니다. 치안의 중요성을 각성할 때 치안에 힘을 쏟게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 천국을 다녀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경험하면 천국을 그리워하며 천국을 빨리 가길 간절히 바라게 될 겁니다. 그리고 천국과 비교되는 이 세상이 변화되어 천국과 같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해질 겁니다. 천국을 경험함으로써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되어 하나님 나라를 간절하게 소망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아름답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길 원한다는 것을 알면 우리 또한 하나님 나라를 간절하게 소망하게 됩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만 교회마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어떤 교회는 천국과 같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좋습니다. 교회 가는 날이 손꼽아집니다. 교회만 가면 행복합니다.
오래전 미국 시카고에 있는 ‘트리니티 교회’ 예배를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녔던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갔을 때 교회의 분위기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만나면 활짝 웃으며 서로 포옹하며 맞이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데 예배가 축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데 각자 나름대로 자유롭게 예배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 서서 찬양하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나와 찬양하는 사람도 있고, 손들고 찬양하는 사람도 있고, 춤추며 찬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아멘도 하고, “Jesus thank you”라고 하고, “That's right” 라고 하며 떠들썩합니다. 그럼에도 예배 분위기가 살아 있습니다.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면 다들 그렇게 좋아합니다.
어떤 교회는 지옥과 같은 곳이 있습니다. 모두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원수처럼 지냅니다. 예민하여 큰 소리가 자주 나고, 싸움이 자주 발생합니다. 같은 교회인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사느냐? 믿음으로 살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우리가 변화되어 천국과 같은 곳이 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삭막한 곳이 되고, 마귀까지 역사하여 세상보다도 더 악한 곳이 됩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려면 이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망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이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눅12:2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고... 다만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시며...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 없습니다. 적은 무리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 천국과 같은 교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히11:24~26절에 모세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얼마든지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쪽을 택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큰 영광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세와 같이 무엇이 영광스런 것인지 각성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 교회가 천국과 같은 아름답고 영광스런 교회가 될 것이며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함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느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면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지만, 뒤로 물러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면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그 수가 적더라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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