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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를 사귀라 (요한복음15:12~15)
백종선 2024-08-11 추천 0 댓글 0 조회 178
[성경본문] 요한복음15:12-15 개역개정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좋은 친구를 사귀라!

성경 / 요한복음 15 : 12 ~ 15

 

에센바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진정한 벗이 있으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천 명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친구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우쳐 줍니다.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정말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훨씬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여행을 가도 좋은 친구와 함께하면 그 여행은 훨씬 즐겁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좋은 친구와 함께 하면 훨씬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혼자서 살아가려면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독한 마음 품지 않아도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만 친구를 잘못 사귀면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하었습니다. (출처 / 정신과 의사도 권유하는 손절해야할 인간관계 top 3)

정신과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상처와 피해를 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받은 상처를 치료하려고 찾아오지만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상처와 피해를 준 사람인데 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치료하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여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데 이런 경우 그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고 관계를 끊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피해야 할 사람으로 세 가지 유형을 말합니다.

첫째, 상대방을 가두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만 만나고 다른 친구를 사귀지 못하도록 합니다. 자기에게만 집중해 주길 바랍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친구를 자신에게 종속시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자 합니다.

둘째,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고, 타인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견디지 못하여 화를 내거나 상대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상대의 의견이 더 타당성이 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들은 대게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대의 가치를 깎아 내림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상대를 인정하고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상대를 자기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셋째, 잘못하고서도 반성하거나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잘못하였을 경우 이를 인정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인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합니다. 명백한 잘못을 했어도 그래 어쩌라고하며 되레 큰소리칩니다.

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자기밖에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대합니다. 이용할만하면 잘해주지만 이용할 가치가 없으면 차갑게 외면합니다. 인격의 성장은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가능한데 이것이 없으니 변화도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인격적인 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친구를 통해 큰 힘을 얻고, 친구와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면 좋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친구의 본을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좋은 친구를 소개합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본문 15절에서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너희를 친구라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로 여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고, 우리는 지음 받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로 여깁니다. 인간이 기계나 제품을 만드는 이유는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좋은 친구로 함께 기쁨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시려고 먼저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본문 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십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준다면 그 친구는 진정한 친구이며, 좋은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친구로 삼으려 하십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친구가 되려면 예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합니다. 예수님이 명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12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예수님이 주신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며, 더 나아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좋은 친구 관계가 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며, 또한 성도간에 좋은 친구가 되는 겁니다.

 

먼저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좋은 친구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뜻에 반응하여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원하면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친구를 어떻게 사귑니까? 친구를 사귀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대화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놀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친구를 사귀려면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좋은 친구 관계를 맺으려면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계시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살아계시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기도로서 예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큰 복입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축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경험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축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5절 하반절을 보면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들은 것을 다 말씀하셔서 우리로 진리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알게 하십니다. 이를 알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를 알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합니다. 또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되어 의인의 길을 갑니다. 생명의 길로 갑니다.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는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여기에 응답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이 주시는 귀한 축복을 충만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성도간에 좋은 친구가 되길 원하십니다. 믿음의 식구들을 사랑하며 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길 원하십니다. 12절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둘째, 사랑의 기준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입니다.

먼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관계는 남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가족입니다.

2:19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하였습니다. 성도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말씀합니다. 외인이 아닙니다. 나그네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여기서 권속은 가족을 말합니다. ‘Familly’입니다. 성도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가족임을 알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남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랑할 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립니다. 사랑할 사람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구분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거스틴인간의 비극은 종종 사랑해야 하는 대상을 이용하고, 이용해야 하는 대상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이어야 햐고, 사랑에 기초한 관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이렇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깨뜨리고 사랑해야 할 대상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인격적 관계입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인 사람을 이용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인 돈을 사랑합니다. 돈을 차지하려고 인간을 배신합니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유태인을 600만명이나 학살한 히틀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히틀러의 전기를 쓴 한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틀러의 불행은 친구가 없었던 데 있다그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사람은 지배와 이용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 불행하게 됩니다.

성도 간에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이용하려 한다면 비정상적인 관계가 됩니다. 세상과 다름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교회 안에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느냐? 우리 교회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되느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그곳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에 사랑이 있으면 천국의 기쁨을 나누게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세상보다 못한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면 이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 되지만 사랑하지 않고 서로 이용하려 하면 불행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전도서4:9~12절을 보면 좋은 친구 관계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4:10). 친구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 친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넘어졌을 때 그 친구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입니다.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거니와”(11) 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나에게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의 감정을 함께 공감해 줄 때 따뜻함을 주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친구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줄 때 좋은 친구를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희망촌교회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십니다. 좋은 친구가 되기를 결단합시다.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는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삼가도록 합시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세워주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서로의 버팀목이 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로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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