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로마서13:8-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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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인간관계의 영적 원리
성경 / 로마서 13 : 8 ~ 10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한 몸을 이루고 있듯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위하여 하와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로 지어졌기에 사랑할 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합니다. 인간이 혼자 동떨어져 산다면 인격적인 존재로 살지 못합니다. 짐승과 다름없는 차원에서 살게 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합니다.
인간다운 삶은 인간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합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다고 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사랑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고 비인격적인 관계가 되면 사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본문 9절에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고 합니다. 이 본문에서 열거한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십계명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다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10절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면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해(害)를 입히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소극적으로 십계명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합니다. 은혜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만약 사랑 없이 율법을 지키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율법은 의무가 되고, 매우 부담스러워집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지 않는 다른 집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 애정도 없는 아이를 맡아 키우면 아주 힘듭니다. 하루도 맡기 힘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녀는 다릅니다. 힘들지만 기쁩니다. 무엇을 해도 예쁩니다. 사랑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율법은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식어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호감이 실망으로 바뀌고,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사랑을 지속하지 못합니까? 왜 사랑에 실패합니까?
미숙한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을 합니다. 조건적인 사랑을 합니다. 사랑의 동기가 자기만족입니다. 소유하려 합니다. 이런 미숙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상대를 힘들게 합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에릭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미숙한 사람의 사랑은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은 만큼 사랑한다.”
사랑은 거래가 아닙니다. 계산하고 따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할 때 혼수로 문제가 발생하여 혼인이 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수를 따진다면 결혼 준비가 안 된 사람입니다. 돈의 준비가 아니라 가정을 이룰 사랑의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이런 부부는 결혼해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먼저 남을 대접하라.
마7: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의 본능은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누가 자신을 알아주면 좋아합니다. 하지만 진작 자신은 다른 사람을 대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사람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대접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이면 기 싸움을 합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기를 꺾어 숙이고 들어오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감정을 건드립니다. 고성이 오고 갑니다.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족관계든, 교우관계든, 친구 관계든 대접받으려 하면 관계는 깨어집니다. 하지만 서로 대접하면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인간관계에서 나를 드러내고 우위에 서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 하면 인간관계는 깨어집니다. 사람을 잃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을 대접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람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람이 큰 자산입니다. 많은 사람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인간관계망이 넓어지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를 맺어 큰 힘을 갖게 됩니다.
인간문명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 사회가 다른 짐승들처럼 몇십 명 단위로 지냈다면 이런 발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겁니다. 인간 사회가 큰 집단을 형성했기에 문명의 발전도 가능했습니다. 자신의 인간관계망이 잘 되어 있을수록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조화와 협력할 수 있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거리를 두면 교회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조화와 협력의 능력을 키워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하나될 수 있을 때 교회가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2. 맛을 내는 소금이 되라.
마5: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맛을 냅니다. 만약 소금이 녹지 않고 짠맛을 내지 않는다면 소금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12: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싹을 내지 않으면 그 밀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싹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으면 값진 한 알의 밀이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맛을 내는 소금이었고, 많은 열매를 맺은 한 알의 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하셨고, 죄악으로 신음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영광스런 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섬기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영광은 화려한 삶이 아닙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를 손에 쥐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귀가 유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시고, 소금이 되셨기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을 이루는 일 쉽지 않습니다. 인내와 성실함이 쌓일 때 성공의 자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자랑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유익한 인생이 되지 못합니다. 기여하는 만큼, 베푸는 만큼, 헌신하고 희생하는 만큼 유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기부’입니다.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기부’를 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기부에 대한 의식이 희박합니다. 그만큼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사회가 삭막하고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부를 상징하는 높은 빌딩을 많이 짓는 것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문화가 더욱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3. 심은 대로 거둔다.
갈6:7,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만고 불변의 진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입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 원칙은 농사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동일합니다. 심은 대로 돌아옵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활짝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하나요? 똑같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차가운 눈초리로 상대를 바라보면 상대도 인상이 굳고 차갑게 대합니다. 인간관계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남을 사랑하면 나도 사랑을 받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나도 미움을 받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면 나도 행복합니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 나도 불행해집니다. 남을 도와주면 나도 도움을 받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나도 피해를 입습니다. 남을 칭찬하면 나도 칭찬을 듣습니다. 남을 비난하면 나도 비난을 듣게 됩니다.
인간관계는 정직합니다. 내가 남에게 한 행동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좋은 날 오기를 기대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실패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중대한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높아지려면 상대방을 비난해서 깎아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면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깎아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꺾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기보다 함께 정상의 자리에 이르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피해야 하는 것이 경쟁의식입니다. 다른 사람을 경쟁 관계로 생각하면 인간관계가 깨어집니다.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생 관계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4.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
요13: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칼 바르트’ 신학자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상을 찾아 헤매는 사랑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시는 사랑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찾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사랑이 열매맺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겁니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찾아가서 진실하게 대화를 나누시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셨고, 그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얻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면 누구보다도 자신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집니다.
‘피터 핸슨’이라는 예방의학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제시한 건강의 방법은 1) 적당한 음식 섭취 2) 적당한 운동 3) 좋은 생활 습관
위의 세 가지를 합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행복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몸의 면역력도 높아지고, 좋은 호르몬이 배출되면서 몸의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립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사랑으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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