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골로새서3:12-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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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 불만을 그치고 감사하라
성경 / 골로새서 3 : 12 ~ 17
골로새서 3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새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라”
바울이 말하는 ‘땅의 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입니다(5절).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모습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대신해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거듭난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너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이므로 거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13절에서는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 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구별된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답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거듭나기 이전과 거듭난 이후의 모습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로 살아가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함입니다.
새롭게 거듭났으면 우리의 성품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격과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므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품은 바뀔 수 있습니다. 성품은 후천적으로 형성됩니다. 자라난 환경, 부모, 가족, 친구, 과거의 경험, 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지금 자신이 가진 성품은 이런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품은 바꿀 수 없는 굳어진 상태가 아니라 바뀔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자로 변화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도와 말씀 생활에 힘쓰면 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성령을 통해 성품이 성숙하면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좋은 향기를 발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할 중요한 부분이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13절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구글 검색에 ‘감사의 반대말’이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불평, 불만, 원망도 감사의 반대말로 손색은 없겠으나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시 여기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감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를 깨닫지 못할까요? 다른 사람의 호의와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건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만 보더라도 쌀을 생산한 농부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습니다. 밥을 지은 주부의 수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밥을 지을 때 사용한 수도시설을 한 분들과 불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스 시설을 만든 분들... 이렇게 따져보면 한 끼의 식사가 우리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는지 그 경우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먹고, 입고, 자고,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를 제공한 누군가의 수고가 있습니다. 이를 헤아리지 못하면 사회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것은 아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다는 말이며, 다른 사람을 살피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와 같은 수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미숙한 상태로는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우며 쉽게 불만과 불평을 터뜨려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은혜를 입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공급해 주시며,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도 우리는 수많은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감사를 헤아리지 못하면 수많은 은혜를 입어도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에 올라와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의 눈물의 기도와 물질적 헌신, 사랑의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마다 나와 교회와 교육관,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매주 교회주보를 작성하고 인쇄하는 분이 있습니다. 매주 성가대 찬양을 위해 수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교회 시설을 보수하고, 화단을 가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차량을 이용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 역시 봉사자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은혜의 손길이 있기에 우리가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수고와 섬김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수고와 헌신과 섬김의 손길을 통해서 움직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손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본인도 하나의 손길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에 직접 참여하면 봉사자들의 수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어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행복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적인 성향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나 그 정도가 심하여 다른 사람을 고려할 줄 모르고, 자신에게만 집착한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 아이가 울 때 정상적인 사람은 아이가 왜 우는지 궁금해하며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데 공감 능력이 떨어진 사람은 아이가 울면 시끄럽다고만 생각하고 윽박지르듯 야단치며 아이를 쫓아냅니다.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었지만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줄 모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공감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 감정적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함께 느낍니다. 감정의 소통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합니다.
자신에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숨기려 하지 말고 오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고, 심각한 집안 문제를 오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소통하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여 감정 교류할 때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감사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이 있고, ‘불만의 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봅니다. 그러나 ‘불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만을 봅니다. ‘감사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불만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감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눈을 가지고 감사하는 자가 될 때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며 좋은 기회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흑인 출신으로 미국 최초로 국무장관이 된 ‘콜린 파월 Colin Powell’ 장군이 있습니다. 그는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그가 17세가 되었을 때 여름방학에 음료수 제조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거기서 인종차별대우를 받습니다. 백인 학생에게는 기계 앞에서 콜라를 담는 일을 시키고, 흑인인 그에게는 걸레질이 시켰습니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일할 기회를 준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청소를 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를 맞아 학교에 다니다가 시간이 지나 방학이 찾아왔을 때 파월은 같은 콜라 공장에 찾아갔고, 이번에는 메니저가 청소가 아닌 콜라를 담은 일을 맡겼고, 그 다음 해는 부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콜린 파월에 관한 이 에피소드 하나만 보더라도 그가 왜 미국에서 ‘합동참모의장’직을 거쳐 국무장관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콜린 파월’ 장군은 불만의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차별대우를 받았음에도 불평하지 않고, 일할 기회를 준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습니다.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반응은 불평 불만이었습니다. 400년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에서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불만과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굶기지 않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광야에서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를 감사하지 못하고 애굽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하며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광야길을 걷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떡으로만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광야는 안식처가 아닙니다.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영적 훈련장입니다. 그 훈련과정이 비록 힘들더라도 인내로서 견디며, 더욱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인내로서 극복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불만을 품게 됩니다. 불만을 품어서 돌아오는 유익은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불편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침 일찍부터 나가 일꾼을 불렀습니다. 그 이후에도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 일꾼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일이 마쳤을 때 주인이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이 왜 자신들에게는 더 주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이때 주인은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인은 선을 베풀었습니다. 늦게 온 사람들도 생계를 이어가야 할 사람들이기에 늦게 온 사람들에게까지 한 데나리온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는 주인의 배려이며, 호의입니다.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들이 왜 불만을 터뜨렸습니까? 늦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자신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는 두 데나리온, 세 데나리온, 네 데나리온을 줄 것을 기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불만을 터뜨린 겁니다. 이들은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주인의 행위가 호의를 베푼 것이며 은혜를 베푼 것임을 알았을 겁니다.
우리도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면 불만을 터뜨리기 쉽습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볼 수 있을 때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집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눈을 가져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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