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20:24-28 개역개정
-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마태복음 20 : 24 ~ 28
제목 / 섬김의 리더십
오늘과 다음 주에 걸쳐 항존직 선거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뽑는 일입니다. 물론 직분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지 않고 형제, 자매 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는 이유는 책임있게 일을 수행하도록 하려 함입니다.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면 사람이 필요합니다. 직분자를 세워 책임을 맡김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임을 말씀합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직분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하기에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선거라는 방식으로 직분자를 세웁니다만 이로 인해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반 선거는 권력을 부여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단체장을 뽑을 때 선거방식을 통해 선출하고, 선출된 사람은 직함에 맞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그래서 지위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며 승리하려고 합니다. 교회의 선거는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뽑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직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도록 뽑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직분’이라는 단어의 헬라어가 ‘디아코니아’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예외 없이 ‘디아코니아’를 사용합니다. 당시 관직을 가리키는 여러 단어가 있었습니다. ‘아르케’, ‘아르콘’, ‘티메’, ‘텔로스’ 등이 있었지만 바울은 교회의 직책을 말할 때 이런 용어를 피하고 ‘디아코니아’를 사용하였습니다. ‘섬기다. 봉사하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섬기는 직분이며, 봉사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권력을 지향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이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의 직분을 권력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직분자가 되었으므로 권력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직분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착각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열 제자가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고 있습니다. 두 형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10명의 제자들이 이 두 사람에 대하여 분히 여기는 이유는 이들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주의 나라에서 두 아들을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도록 명하여 달라고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다른 제자들이 분노한 것을 보면 이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출세 지향적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겨야 대접받고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기에 어려서부터 경쟁력을 갖기 위해 혼 힘을 기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 치러지고, 어떤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높은 경쟁력은 갖게 되었으나 인간성이 파괴되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5월 6일 금요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푸른나무 재단 김종기 이사장에 관한 사연입니다. 김종기 이사장이 대기업 임원으로 있을 때 외국에 출장을 가 있는 동안 날벼락같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이(당시 고1) 방과 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5층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1층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 위에 떨어져 살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 다시 투신하여 결국 사망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종기 이사장은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재단을 만들었는데 바로 푸른 나무 재단입니다.
출세 지향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병폐 중에 하나가 인간성 파괴입니다. 인간적인 도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됩니다. 학교에서조차 이와 같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출세 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집권자들, 고관들과 달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주관하고 그들 위에서 권세를 부리는 줄로 알지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크고자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사역이 섬김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리더십, 종의 리더십’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권력을 쥐고, 권좌를 차지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28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입니다.
22절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으려고 했던 그들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신 잔은 희생의 잔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신 십자가의 잔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 없이는 마실 수 없는 잔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목적은 자기 출세입니다. 자기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탐하고, 경쟁 상대인 다른 사람을 시기하였습니다. 우리도 자칫 잘못 생각하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가져야 할 정신은 섬김의 정신입니다. 섬김의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나를 부르시고 일꾼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모든 만물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이것저것 여러 일을 맡아서 하다보면 내가 없으면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출애굽 구원의 사건을 없었을까요? 모세가 아니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출애굽 구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부족한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신 직분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두 종류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관리 감독하는 ‘관리형 리더’와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Influence leadership’입니다. ‘관리형 리더’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사람을 뽑고, 명령하고, 감독하며 최대한의 성과를 올리려 합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명령과 통제입니다. 이전의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관리자의 모습입니다.
리더십의 전문가인 ‘제임스 헌터’(James C. Hunter)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관리할 수 없다. 리드해야 한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정치인인 ‘로스 페로’(Henry Ross Perot)는 “사람을 관리할 수 없다. 굳이 관리하고 싶다면 재고 목록이나 수표장을 관리하고, 당신 자신이나 관리하라” 하였습니다.
사람을 관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비인격적인 겁니다. 사람을 기계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하고 감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통제를 받고 감독을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 아닙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리더십은 다른 사람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Influence leadership’입니다. ‘Influence’는 영향을 끼치다는 뜻입니다. ‘Influence leadership’은 사람을 세웁니다. 사람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주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끕니다.
사회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과 ‘권위’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권력이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지위나 힘을 이용하여 타인을 강요하고 강제하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시키는 대로 해!”입니다. 권위란? “영향력을 통해 다른 사람이 행동하도록 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Influence leadership’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진정한 권위는 섬김에서 나옵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섬길 때 진정한 권위가 나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타인에게 봉사한다면 누구든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봉사에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치 않습니다. 봉사하기 위해 물리학 이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자비로 충만한 가슴, 사랑으로 가득한 영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내 만족을 추구합니다. 내 즐거움이 우선입니다. 이런 의식이 팽배한 문화에서 섬김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이야기하면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하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섬김의 삶과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실천해 볼 것을 권면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섬기고 봉사하려고 해 보십시오. 남보다 앞서 문을 열어주고, 차에 탈 때 자리를 양보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힘이 약한 노약자를 도와주고 이렇게 섬기고 봉사한 후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반대로 기회가 될 때마다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해 보십시오. 모든 것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지겹고 단조로운 일은 피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해 보십시오. 자신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는지, 성취감을 느끼는지 좌절감을 느끼는지 경험해 보십시오. 봉사하고 섬기는 자세로 살아갈 때 뿌듯함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이 넓어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기쁨이 충만한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성도들이 경험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기만 알고,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무익한 존재였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사랑을 베풀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면서 이웃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풍성한 삶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본받아 섬김의 삶을 살 때 더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리더는 예수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삶을 본받아 종의 자세로 섬기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 사람이 진정한 리더입니다.
우리 희망촌교회에 예수님의 리더십을 본받는 ‘섬김의 리더’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자신을 희생하고 기꺼이 학생들을 섬기는 지도자가 될 때 교회학교가 살아날 것입니다. 성가대원들이 성가대를 위하여 헌신하며, 서로를 섬기려 할 때 성가대가 살아날 것입니다.
이번 중직자 선거를 통하여 섬김의 리더들이 선출되어 교회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아름다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