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50:2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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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시편 50 : 23
제목 /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정신이 감사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절기를 정하시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는 자가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삶이 힘들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온실 안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성장기에 있는 자녀들은 삶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가정을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낍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직장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심지어 배우자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불행의 늪으로 빠뜨릴 뿐입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삶이 괴롭습니다. 감정이 우울합니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감사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겁니다. 깨닫는 겁니다.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이 감사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가 쓴 ‘주는 나의 피난처’에 그녀가 겪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네들란드인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만행으로부터 유대인들을 보호해주다가 이것이 발각되어 가족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이곳에서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6살 많은 언니로부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고, 감사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악명 높은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자매가 투옥된 방은 침실이 성냥갑을 쌓아 놓은 것처럼 되어 있어 높이가 낮아 앉을 수도 없습니다.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이와 벼룩이 들끓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 자매는 이런 환경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이와 벼룩이 들끓고 냄새가 많이 나니 간수들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게 기도하고, 말씀을 잃고, 그곳에 수용된 많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이겨내며 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감사할 때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눈을 가졌다는 것은 보아야 할 것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뜻이며,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으로부터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법을 배워 누가 선물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면 ‘감사합니다’하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품는 것은 성숙한 단계에 이른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대상이 누구였습니까? 언제 그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까? 철이 들고 그분들이 베풀어준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을 때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을 겁니다.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은혜를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면 그 대상과 관계가 새로워집니다.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이해타산의 관계를 넘어서서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며 진실하게 사랑합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느끼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대상이 많을수록, 감사의 마음이 커질수록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해집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밥상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보금자리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크게 느낀 것은 일상생활의 소중함입니다. 코로나를 겪기 전에는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하고,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모르다가 코로나 19를 겪고 난 후에야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이를 감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연시하던 것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맑은 물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게 됩니다.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여 어려서부터 일터로 나아가 힘든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됩니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는 판자로 만든 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보면 지붕이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수고가 있습니다. 누군가 베풀어준 은혜가 있습니다. 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눈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며 만족하지 못합니다. 좋은 집에 살아도 나보다 더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을 보면 역시 만족하지 못합니다.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민수기 6:24~26절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복과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복과 은혜와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향하여 품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키워 자녀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가르치고, 때로는 훈육하고, 많은 경험을 쌓도록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행하는 모든 것의 목적은 자녀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복을 주시고, 은헤를 베푸시고, 평강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고후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하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새롭게 거듭나기 전까지는 옛 생활과 옛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새로워지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때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르치고 교훈하며 때로는 책망도 하시며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이 배움과 훈련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습니다. 배움과 훈련의 과정은 연단의 과정이므로 힘이 듭니다. 오랜 시간 광야의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합니다. 모진 찬바람과 마주칠 때도 있고, 뜨거운 태양열 아래 사막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고독과 싸워야 하고, 차가운 냉대와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금 같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고난이 유익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그릇으로 준비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선한 길로 인도하셔서 복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를 알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생명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범죄한 자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생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는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이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았을 겁니다. 마음의 불안과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살았을 겁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며 헤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아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의(義)의 길을 가며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서로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깨달을 때 진심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15:8절에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강단에 감사절 장식을 해놓았습니다. 강단에 올라온 것 중에는 성도님이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것이 있습니다. 열매는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이 가야 합니다. 나무만 심어두고 방치하면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직접 짓는 분들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돌보아야 합니다. 때에 맞춰 거름도 주고, 약을 쳐야 합니다. 이런 정성과 노력이 들어갈 때 좋은 결실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였습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둡니다. 이 원리를 알고 열심히 씨를 뿌리고 노력하는 자가 많은 열매를 거두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무시하고 심지 않는 데서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고 했다”고 하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관이 잘못되어 있으면 요행을 바라게 됩니다. 수고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고 대박나기 원합니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병들게 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개업만 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있습니다. 도박사업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카지노나 경마장에는 사람들이 들끓습니다. 작년 우리나라 사행산업 총매출액이 22조 6천 5백억 정도됩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많은 사람이 요행을 바라고 한탕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런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착실하게 성실히 일하여 돈을 벌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이런 요행을 바라는 겁니다. 이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거둔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자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영광을 거두십니다.
땀과 노력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하루를 알차고 성실하게 보내는 사람,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결국 큰 것을 이루게 됩니다.
‘감사하다’ 뜻을 가진 헬라어가 ‘유카리스티아’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떡을 떼어 축사하셨습니다. 여기서 축사하다는 말이 ‘유카리스티아’ 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가르치실 때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축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축사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을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독일의 ‘본 훼퍼’ 목사님은 “인생은 고마움과 감사를 통해서 더욱 부해진다” 라고 했다. 감사하는 자가 부하게 되고, 감사하는 자가 잘 될 수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감사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예배에 참여하는 희망촌교회 모든 교우에게 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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