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6:13-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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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고린도전서 16 : 13 ~ 14
제목 / 교회를 향한 명령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읽지만 각 교회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생명력이 살아 있어 교회의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며, 사회를 선도하며 좋은 영향력을 미치며 칭찬을 받고, 성도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신앙 생활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생명력이 없고, 사명감이 없고, 다툼과 분쟁이 있고, 차갑고 냉랭하고, 성도들은 기쁨이 없이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함께 기쁨으로 헌신할 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은 좋은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다툼과 분쟁이 있고, 우상을 숭배하며, 음란을 행하는 자가 있었고, 자기 은사를 자랑하며 자기를 높이고, 서로를 비난하고, 예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온전한 교회로 세우려는 목적으로 고린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본문은 고린도전서의 결론부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온전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교회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이 말씀으로 더욱 온전한 교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는 교회, 모든 성도가 행복하고 보람된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네 가지로 권면합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 (Be on your guard)
바울은 먼저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전시에 경계근무는 아주 중요합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경계근무를 소홀히 하여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하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경계를 서는 경계병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경계근무에 임합니다.
성도는 경계병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악한 영의 세력과 전시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망각하고 안일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엡6:11절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공격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초대교회 때처럼 심판 핍박과 박해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못하도록 해서 성도들을 안이한 상태에 빠지게도 만듭니다. 사실 더 위험한 경우는 평화로울 때입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안하면 전시상황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안이한 상태로 빠집니다. 핍박이 심할 때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지하에서라도 모여 예배를 드리며 이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안일해지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교회 봉사가 귀찮아지고, 기도도 게을리하게 되고, 심지어 교회에 나오는 것조차 귀찮아 시간 맞추어 나오는 것도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집니다.
우리나라에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경계 태세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 적에게 침략의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방비상태로 있으면 마귀에게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영적으로 무장하여 마귀의 공격과 유혹을 잘 방어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헤이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안일한 상태에 빠져 있다면... 깨어나야 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상나팔 소리로 듣고 깨어나서 마귀의 유혹에 잘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굳게 서라! (stand firm in the faith)
영어 성경에는 ‘stand firm in the faith’로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안일한 상태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라는 말씀이라면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은 믿음을 강화하여 확신 있는 바른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정신 무장이 안 되어 있고, 훈련이 부족한 군인은 전쟁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하면 영적 싸움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많은 문제를 노출시킨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만큼 지식을 갖추었으나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하여 분쟁이 발생하고, 교회가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 근본에는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지 못한 데’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지 알고, 십자가의 도를 따랐다면 그들이 노출시켰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십자가의 도(道)’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지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고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이 은혜의 위대함을 깨달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망과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패하고 죄에 물들어 있는지를 알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합니다. 은혜의 위대함을 알고 은혜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로 살아갑니다. 이 신앙이 있을 때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람은 죄를 쉽게 범하지 않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음행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다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터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도’ 위에 여러분의 신앙이 서 있습니까? 막연하게 아는 정도여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은혜를 베푸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 이 신앙의 터위에 여러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갈 수 있기 바랍니다.
셋째, 남자답게 강건하라. (be men of courage; be strong)
영어 성경을 보면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be men of courage) ‘강하라!’(be strong)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를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난관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용기 있는 강한 사람이 되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분이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힘과 남자다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조각작품을 보면 근육질의 남성을 작품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다움을 이야기할 때 용기와 강함을 언급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려면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강함과 용기보다는 겸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시며.. ‘자기를 낮추어 사람이 되시고 종이 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요? “깨어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용기와 강함은... 믿음 안에서의 용기와 강함입니다. 진리와 관련된 용기와 강함입니다. 아무리 용기와 강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믿음과 진리와 연관되지 않은 것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남자답게 강건해질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합니다. 시시콜콜한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입니다.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며 자기 권위를 내세웠습니다. 이들이 이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14:20절에서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깊이를 더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한 가지만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가 아는 것이 진리이고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틀렸다고 쉽게 판단합니다. 하나만 안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의 폭이 좁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단에 쉽게 넘어갑니다.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지난 주간 노회고시가 있었습니다. 목회자 후보생들이 시험을 치러 왔는데 면접할 때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얻은 유익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이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음에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여러 신학을 접하면서 혼란이 왔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내 신앙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더 바르고 건강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신학생이 중요한 경험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한 곳에 빠져 있으면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배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바른 신앙인지 깨닫게 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쓴 ‘위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구원의 감격을 경험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주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에서 어떻게 성장하였습니까? 이 질문은 던진 후에 “진리를 연구하고 깨달음으로서 강해져야 합니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아는 일에 힘을 쏟아 깊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감정에 치우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감정에 의해 뜨거워졌다가 감정이 식으면 신앙도 시들해지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왜 의(義)의 길을 가야 하는지? 내가 왜 거룩해야 하는지? 내가 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지 분명한 이해와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군인들은 생명 바쳐 싸웁니다. 왜입니까? ‘조국을 위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을 지켜야 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까? 여기에 구원이 있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진정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때 강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넷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Do everything in love)
이 세상은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사랑을 한낮 감상주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한가롭고 평화로울지 몰라도 지배 세력이 되려는 사람들 사이에는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총칼로 싸웠다면 지금은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싸웁니다. 그러나 치열함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참된 평화와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고린도교회에 다툼과 분쟁이 있고, 소송까지 발생한 것은 그들은 힘의 위력만 알았지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기 위해 고전 13장 전체를 할애하여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성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된 교회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의로움도 사랑이 없으면 칼날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의로움은 의(義)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고 의로움만 강조하는 사람은 감시자가 됩니다. 도로 한 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위반차량을 발견하면 달려 나가 차를 세우고 딱지를 떼는 경찰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발견하였을 때 뭔가 엄청난 것을 발견한 것처럼 “그 봐라”하며 흥분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공개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의(義)가 무엇입니까? 구원하시는 의(義)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그 사랑이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바울은 고전 8장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사음식과 관련해서... 바울 자신은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먹는 것이 가능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가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부정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양심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제사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옳은 소견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義)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게 주신 네 가지 명령을 살펴보았습니다. 문제 많았던 고린도교회를 바른 교회, 좋은 교회로 세우기 위해 고린도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자... 모든 교회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첫째, 깨어 있으라
둘째, 믿음에 굳게 서라
셋째, 남자답게 강건하라
넷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 명령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우리 희망촌교회가 더 온전하여지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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