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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 (시편119:105~107)
백종선 2020-10-25 추천 0 댓글 0 조회 382
[성경본문] 시편119:105-107 개역개정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시편 119 : 105 ~ 107

제목 /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성당 입구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함으로 종교개혁의 불꽃이 점화되었습니다. 세계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종교개혁주일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회회복운동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교회개혁입니다. 일반 종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개혁이 필요합니까? 눈에 보이는 교회가 완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지만 교회는 변합니다. 가변성이 있습니다. 나쁘게 변할 수도 있고, 좋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부패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개혁교회의 기본정신이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없이 계속해서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는 언제나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역사가 이를 보여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이 중심이 되면 부패합니다.

부패한 중세 교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닌 교황이 있었습니다. 교황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었습니다. 교황은 완전한 자라 칭함을 받으며 절대 권좌에 올랐습니다. ‘교황 무오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황을 신처럼 받들었습니다. 교황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타락하고 세속화되고 썩을 대로 썩어 교회의 거룩함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중세교회의 타락상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습니다. 사탄은 틈만 나면 아담을 유혹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라고 유혹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사탄은 지금도 유혹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이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넘어가는 순간 교회는 타락합니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교회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중세교회가 타락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여기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막강한 교황 세력 앞에서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을 때 용감하게 개혁의 기치를 든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입니다. 위클리프, 얀 후스, 루터, 칼빈, 쯔빙글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의 목소리를 내면서 종교개혁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본격적인 종교개혁운동의 발화점이 된 사람이 마틴 루터입니다.

마틴 루터가 젊은 시절 그가 가졌던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 사이의 불일치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반면 중세교회는 심각하게 타락해 있었습니다. 성직을 매매하고, 돈을 주고 성직자가 된 그들은 고리대금업을 하며 막대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루터의 설교를 보면 당시 주교들은 연 40%에 이르는 높은 이자를 받았습니다. 교황은 베드로 성당 건축을 한다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루터는 타락한 중세 교회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루터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가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빗길을 가다가 벼락이 떨어져 옆에 있던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구원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는 구원을 확고히 하고자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성경 읽기, 묵상, 금욕생활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하였지만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루터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은사였던 슈파우피츠가 루터에게 성경을 연구하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었고, 루터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성경 연구에 전념하여, 30세가 되던 해에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깊이 읽어 가던 중에 성경에서 구원의 확신을 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1:17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말씀에서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노력으로 선행과 공로를 쌓아 어떤 단계에 도달해야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루터는 중세 교회 문제의 핵심이 잘못된 구원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내어놓습니다. 중세교회가 구원의 수단으로 가르쳤던 공로나 면죄부가 아니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주창하였습니다.

 

루터는 정식으로 교황청을 향해 공식적인 토론을 제안합니다. 15171031일 비텐베르그 성당 정문 게시판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 걸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 중세교회를 향하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공개적으로 토론해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루터의 제안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반박문이 예상 밖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자 교황 레오 10는 루터에게 파문장을 발송합니다. 그 주장을 철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굴복하지 않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파문장을 불살라버렸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루터는 독일 백성들의 지지를 힘입어 본격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개혁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중세교회의 문제점만 제시하고 항의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성경에 근거한 진리를 제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중세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했던 핵심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알아야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알고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했던 핵심 모토가 5가지입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최고의 권위를 교황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두었습니다. 중세교회는 성경 66권을 정경으로 확정한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성경 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정경으로 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스스로 증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므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교황의 권위도, 교리적 권위도 성경에 종속되어야 하며.. 모든 교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청이 아닙니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는 권위는 없습니다. 교회의 법도, 기독교 교리도, 교회 전통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지 못합니다. 인간이 만든 법, 교리는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둘째, ‘오직 믿음(SOLA FIDE)’입니다.

마틴 루터가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진리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교리가 나왔습니다. 로마교회는 이러한 진리를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구원의 조건으로 인간의 공로나 면죄부를 가르치며 우매한 성도들을 속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영혼을 팔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사악한 짓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의()가 전가(轉嫁)되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중세 교회가 구원의 방법으로 가르쳤던 성인 숭배, 성지 순례, 고행, 면죄부는 구원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의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부패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에 있어 인간이 기여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구원을 완전히 성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인임을 깨우쳐주시고, 구원의 진리를 깨닫도록 지혜를 주시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죽은 영혼은 스스로 살아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생명을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넷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구원의 효력을 발생하는 것은 믿음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롭게 하고, 그리스도가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생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비로소 우리는 제자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다섯 가지를 통해서 교회와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 권위로 인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까?

·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됨을 믿습니까?

·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믿습니까?

·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믿습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제2의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영국교회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이안 머레이(Ian Murray)’ 목사는 부흥과 부흥주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 성도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진정한 성도들 보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많다 보니 교회가 세속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그 결과 교회는 거룩성이 약화되고, 교회와 세상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되어 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35년이 지났습니다.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 세계교회가 놀랄 만큼 부흥을 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7개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겁니다. 중세 교회는 규모 면으로 보면 엄청났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교회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세교회를 모범적인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외형과 교회의 온전함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외형적으로 커졌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외형적으로 큰 만큼 변질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데니스 레인(Denis J. V. Lane)’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자랑만 하지 마십시오. 100년 전에 영국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교회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영국교회는 텅텅 비어 박물관처럼 되었습니다. 50년 후에 한국이 영국과 같이 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며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올해 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발표내용을 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수가 32%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64%나 되었습니다. 종교별 신뢰도에서도 가톨릭과 불교에 이어 세 번째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얼마나 신뢰를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자료입니다.

 

왜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요?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이안 머레이 목사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교회가 세속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화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중세는 잘못된 구원관인 공로설을 가르쳐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면 지금은 구원의 복음을 잘못 가르쳐 세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를 더 이상 선행이나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루터의 이신칭의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책을 보면 여기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몽매한 사람들아 그렇지 않다. 사람이 신자인지 불신자인지는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며...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듯이 구원받고 의롭게 된 사람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이웃 안에서 산다고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막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리 안에 있을 때 세속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있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둠을 밝히는 등이며 빛입니다.

 

한국교회가 신뢰를 상실하고 제2의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강력히 요청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한국교회는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복음의 불꽃이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희망촌교회가 끊임없기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는 개혁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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