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4:11-1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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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에베소서 4 : 11 ~ 16
제목 / 온전함을 이루라
우리 모두는 보다 나은 세상, 보다 나은 삶을 원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원합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 결과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인류가 이루어놓은 것을 보면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오래 전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였습니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나무 열매를 채집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신세계입니다.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지나 산업 혁명 시대를 거쳤습니다.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기계 혁명’이라 불리는 1차 산업혁명, 전기 동력의 발명으로 시작된 ‘에너지 혁명’이라 불리는 2차 산업혁명을 거쳐... 컴퓨터 정보통신의 발명으로 시작된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견으로 시작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인류가 이루어놓은 발전은 과히 놀랄 만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놓은 발전에 대하여 냉철하게 성찰하고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과 변화의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개선되어야 할 점은 없는가? 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인간의 지배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 철기 시대로 바뀔 때마다 씨족 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부족사회에서 국가로 사회의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구를 일찍 발명한 사람들이 그 기구를 이용하여 뒤떨어진 문화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침략하여 세력을 확장함으로 사회 조직이 커진 것입니다.
돌을 가진 사람들과 칼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칼을 가진 사람과 총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새로운 도구를 개발한 사람들이 이기는 것은 너무 자명합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새로운 도구를 만들게 되었고, 도구를 가진 자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큰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가나 사회 조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승리를 거둔 지배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패배자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힘 앞에 굴복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기계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기 기관이라는 기계를 발명하였을 때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생산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손으로 생산하던 가내수공업이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가내수공업을 하던 사람들은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수공업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만약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가내수공업을 하는 사람들의 형편을 생각하여 혜택을 함께 나누었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좋아했을 겁니다.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기술적 혁신은 인간의 진보에 기여한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이제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종속적 관계로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하였습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기술 문명의 발전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술 문명을 손에 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경제적 박탈을 당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기술 문명의 발전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여 사람을 지배하고 지배받는 구조가 되어 인간성 파괴를 가져오고, 다수의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이라면 이건 악(惡)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면 선(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 문명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 있고,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칼을 예로 들면 칼의 용도를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든지,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사용한다면 선이 되지만, 그 칼로 사람을 위협하고 살해하는데 사용한다면 그건 악입니다. 비행기도 사람을 나르고 물자를 나르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선(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비행기에 무기를 싣고 사람을 살상하는 용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악(惡)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사용목적과 결과입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 그 결과가 무엇이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 문명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파고들면 거기에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술문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기술 문명의 발전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잘못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고쳐 선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함을 말씀하신 적은 있습니다.
사2:4절을 보면...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루실 세상을 말하면서... 칼과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어 다시는 나라가 나라를 대항하여 칼을 들고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기술 문명보다 사람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이 악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그것이 화가 되지만, 기술 문명이 크게 발전하지 않아도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면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기술 문명의 발달에 대해서는 모든 힘을 기울이면서... 우리 스스로가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 되려고 힘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인성교육이 소홀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하면... 기술 문명이 화가 될 수 있습니다.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여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 문명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뜻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로 원하는 것을 보면... 물질의 복입니다. 자녀의 복입니다. 진학, 승진, 사업성공, 건강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진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드시기 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시기 원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희망쵼교회 교우 여러분! 온전한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이를 위해 힘쓸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직분을 주신 목적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그 방법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사람을 이룰 수 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힘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열쇠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믿으면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저술가이자 목회자인 ‘맥스 루케이도’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성장하여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성장하고 변화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무슨 일을 할 때 계산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손익을 따집니다. 그래서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으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것인지를 판단하여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 나갈 때 이런 과정이 쌓여서 우리가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망치와 정으로 수없이 깨뜨리고 쪼아내는 일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조각가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깨뜨리십니다. 더럽고 추한 것을 잘라내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벗기십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있습니다. 실패합니다. 넘어집니다. 자존심이 무너집니다. 이 때 자신을 잘 돌아보십시오. 왜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나의 부족함과 허물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문제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일을 잘 했는지 못하였는지가 아니라 내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성품과 감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때도 자기를 성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상대방의 문제가 클 수 있으나 동시에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약점이 있고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감정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고쳐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삼으면 여기서 성장합니다. 성숙합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다듬어갑니다. 그리스도인이 겪는 모든 역경은 자기 성숙의 기회가 됩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역경 때문에 쓴 마음(Bitter)을 품지 않으면, 역경은 당신을 더 나은(Better)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역경이든 하나님이 나를 빚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 바르게 서고자 노력할 때... 정금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될 때... 얻게 되는 유익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잘못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자신을 바르게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문명을 누리느냐? 우리가 어떤 힘을 가지느냐? 우리가 얼마만큼의 물질을 소유하느냐? 이보다 더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온전함입니다.
아이에게 칼을 주면 위험합니다. 돈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큰돈을 쥐어주면 그 돈이 화가 됩니다. 기술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되면 인류에게 고통을 줍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내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힘씁시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리스도까지 성장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손에 정금 같이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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