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18:1-6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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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 / 어린이의 재발견
제목 / 마태복음 18 : 1 ~ 6
192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 만해도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이놈’, ‘어린 것’이라고 불리며 아이들이 천대받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던 소파 방정환 선생이 가장 먼저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어린이’는 ‘어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리다고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로 부르지 말고 어린이를 인격체로 준중해서 부르자는 뜻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23년 5월 1일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에서 기념행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습니다. 이후에 일본의 탄압으로 5월 첫째 주일로 변경되고,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취소되는 등 우려곡절을 겪다가 해방후 1946년 5월 5일에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다시 개최되면서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칫 무시당하기 쉽고, 소외당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인격과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셨고,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본문에서 살펴보면서... 어린이를 재조명하고 어린이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크냐?”를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자격을 말씀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어린 아이와 같아져야...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어린 아이의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순수함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위선이 없습니다. 그들은 마음과 표정과 행동이 일치합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합니다.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기분이 상하면 토라집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순수함을 잃어갑니다. 마음으로 품은 생각과 겉으로 표현하는 말이 다릅니다. 속으로 탐욕을 품고 악의를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에 가면을 씁니다. 속생각과 겉 표현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습니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입을 맞추면서도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이것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마귀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어찌 천국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천국의 백성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해야 합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의 단순함과 순수함이 어리석게 보이지만... 예수님은 이런 어린 아이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뒤틀린 마음이 아닙니다. 겉과 속이 다른 두 마음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거짓이 없는 깨끗한 마음, 악의가 없는 선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희망촌교회 교우들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허물없이 사귀면서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데려와 세우시고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크냐?”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사회는... 큰 자가 군림하고, 큰 자가 대우받고, 큰 자가 이권을 누리는 사회입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큰 자가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큰 자가 되는 게 중요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제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입니다. 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힘쓰고, 더 큰 힘을 가지려고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자녀들을 가르칠 때에도... 어려서부터 큰 자가 되어야 한다고 쇠뇌를 시킵니다. 큰 자가 되어야 대접 받고, 큰 자가 되어야 큰 소리 칠 수 있고, 큰 자가 되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녀들에게 ‘큰 자’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라고 하며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게 합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행복해졌습니까? 만족스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경쟁이 끝이 없습니다. 모두가 경쟁상대입니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패배자가 됩니다. 내가 살지 남지 못하면 밀려납니다. 이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여유 없이 살아갑니다.
투견장에 내몰린 투견처럼...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서로 높아지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나라가 아니라... 낮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나라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내가 부자가 되고, 내가 군림하기 위해... 공부하고 땀흘리고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행복을 함께 나누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모두가 기쁨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면 그곳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벧전5:5~6절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내가 높아지려고 노력해야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높아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다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내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올라가도 추락합니다. 언젠가는 패배자의 쓴 맛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이시면... 그 영광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높아져도 교만하지 않고 한결같이 겸손하여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져서 십자가의 죽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 영광은 영원한 영광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손에 높임 받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린이를 잘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를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동의 시기만큼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 이 때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아이의 평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뛰어난 스포츠인이나 예술인... 세계적인 석학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어려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동시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여 아이를 방치하면... 잠재능력을 꺾는 꼴이 됩니다.
아동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넉넉한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넉넉한 사랑을 받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활짝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에릭 버터워드가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대학 교수가 사회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볼티모어 빈민가로 보내, 그곳에 살고 있는 2백명의 소년들에 대한 생활환경조사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평가서에는 “이 아이들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전혀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다른 사회학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고, 그 학생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가 궁금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사망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20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보통 이상의 성공을 거두어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들 각자에게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들은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여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다행히 그 여교사가 생존해 있었고, 그 교수는 그녀를 찾아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빈민가의 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물로 만들어 내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여교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간단한 일이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아이들을 어리다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됩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들은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실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본작가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쓴「토토의 새로운 세상」에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어린이 구호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이티의 실상을 기록한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카리브 해에 접한 아이티는 오랫동안 독재 정치가 계속된 탓에 국민의 80퍼센트가 실업자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여자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을 한다. 아이티에서 매춘하는 사람의 72퍼센트는 HIV(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 몸이 작은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나와 동행한 카메라맨에게, “날 사요.” 하고 말했다. “얼마?”냐고 묻자 “6굴드면 돼요.” 하고 대답했다. “에이즈, 무섭지 않니?” 하고 물었다. “에이즈에 걸려도 몇 년간은 살 수 있죠? 우리 가족은 당장 내일 먹을 게 없어요.” 하고 대답했다. 이 아이는 42엔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 지뢰의 공포에 떨면서 생활하는 아이, 영양실조로 단백질이 부족해 뇌에 장애를 일으켜 설 수도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어 바닥을 기는 아이, 게릴라에게 당해 열다섯 살에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업고 총으로 자신의 마을을 발포해야 했던 여자아이, 먹을 물을 길러 5킬로미터나 걸어가는 아이…. 이 지구상의 87퍼센트의 아이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살며, 그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명을 걱정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머지 13퍼센트가 선진국 어린이. 이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물을 마시고, 밥도 먹고, 예방주사도 맞고, 교육도 받고 있다. 감사하게도 일본은 그 13퍼센트 안에 들어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지구상의 아이들 모두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때가 온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의 아이들은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생존의 위기에 몰려 살아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구상에 있는 아이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모든 어린이는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구역에서 선교회에서 컴미션 선교단체를 통하여 어려운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하며... 이 일이 더 확대되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어린이들은 바로 우리 모두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사랑과 격려와 칭찬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사랑과 격려와 칭찬이...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우리 아이들이 꿈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게 할 것입니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여... 아이들을 잘 육성하고,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어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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